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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날 어린 아들은 속상함이라는 감정을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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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육아 #말그릇 #감정


    말그릇 / 저 : 김윤나

    우리는 큰맘 먹고 소방본부 세트를 사주었고 아이는 신이 나서 집에 돌아오자마자 아빠와 장장 두 시간에 걸쳐 소방차 한대를 만들었다. 조막한 한 손으로 자기 손마디보다 작은 부품들을 요리조리 연결하느라 땀으로 버벅되었지만
    아들은 조립을 마치고 환호성을 지르게 되었다.  그때 나는 하필이면 그 명장면이 펼쳐지고 있는 거실이 아닌 안방에 있었다.

    남편은 '엄마에게도 자랑해야지' 하고 아들을 부추겼고, 아들은 작품을 들고 종종거리는 발걸음으로 달려오다가 그만 안방 입구에서 그것을 툭! 하고 놓치고 말았다. 묵직한 소리와 함께 깨알 같은 레고 부품들이 침대 밑이며 옷장 아래로 산산히 흩어졌다. 순간 0.1초간 정적이 흘렀고, 잠시 후 아이는 '으앙'하며 울음을 터뜨렸다. 그리고 내게 소리쳤다.

    "엄마 미워!!! 다 엄마 때문이야!"

    당혹스러웠다. 하지만 곧이어 감정을 가르쳐줄 좋은 기회라는 생각이 들었던 나는, 분에 못 이겨 울어재끼는 아이를 품에 안으며 이렇게 말했다. 

    "아들, 속상하지… 지금 아들은 속상한 거야. 그러니까 화내지 않아도 돼. 속상하면 속상하다고 말하고 엄마에게 위로 받으면 되는 거예요, 알았죠?" 

    이 말을 들은 아이는 눈을 몇 번 껌뻑이더니, 더듬더듬 말했다. 

    "그럼 나 속상해요. 엄마, 나 속상해요." 

    그리고는 아까보다 더 크고 서럽게 울기 시작했다. 그리고 얼마 동안 맘껏 울고 난 아들은 마침내 속이 개운해졌는지 눈물을 슥 닦더니 사라진 조각들을 다시 찾게 도와 달라고 말했다. 아들에게서 진짜 감정을 인지하고 해소한 사람의 시원함 같은 게 느껴졌다.




    그날 아들은 속상함이라는 감정을 배웠다. 다양한 감정의 목록 중에서 '속상함'이라는 감정과 그 감정을 다루는 방식을 배웠다. 아마 다음에 또 비슷한 상황이 생긴다면 그때는 벌컥 화를 내기보다는 속상하다고 말하고 더 빨리 위로받고 감정을 추스르게 될 것이다.

    "마음에 들지 않는 감정 한 가지만 골라서 마비시킬 수는 없다.
    어둠을 마비시키면 빛도 마비된다."

    살면서 느끼는 다양한 감정에 마음을 열어두자. 감정을 골라서 편애하지 말고 감정의 창문을 활짝 열어두자. 감정이 나를 위협할까봐 창을 꼭꼭 닫아도, 그것마저도 불안해서 사람들을 피해 꼭꼭 숨어 있어도 감정은 어차피 나를 찾아온다. 그러니 피하지 말자. 인생에서 겪게 되는 다양한 경험을 기꺼이 받아들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