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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동 북촌댁의 나눔과 베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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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동 북촌댁
    명문가


    안동 북촌댁은 풍산 류씨 가문이 지은 집으로, 하회마을을 대대로 지켜온 집안입니다.

    풍산 류씨 가문은 영남 일대에서 7대가 200년간 부와 명예를 누린 명문가입니다. 북촌댁은 소작인들에게 유독 관대했다고 합니다. 때문에 적선지가(착한 일을 많이 한 집)라고 불렸습니다.

    조선 후기 양반이 소유한 토지의 소작료는 대부분 수확물의 70%가량이라 소작인은 고작 30%만 가져갈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북촌댁은 수확물을 소작인과 공평하게 1:1로 나누는 것을 원칙으로 삼았으며 흉년이 들었거나 집안 사정이 나쁠 때에는 소작인이 60~70%가량의 수확물을 가져갈 수 있게 했습니다. 그 덕분인지 북촌댁은 구한말의 혼란한 시기를 무사히 넘길 수 있었으며, 동학농민운동이 한창일 때조차 북촌댁은 농민군의 공격을 받지 않았다고 합니다.



    1859년 여름, 하회마을에는 홍수가 일어났습니다. 당시 북촌댁을 확장하기 위해 최고급 목재를 3년간 찌고 말리기를 반복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하회마을 강 건너 부용대 쪽에서 사람을 싣고 마을로 오던 배가 폭우로 인해 불어난 강의 물살을 버티지 못하고 뒤집혔습니다. 배에 사람이 많았던 데다 저녁이라 큰 인명피해가 날지도 모르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때, 북촌댁을 지은 류사춘의 증손인 류도성은 북촌댁에서 관리하던 최고급 목재를 강물에 띄워 뗏목으로 삼았을 뿐 아니라 한밤중에도 구조가 가능하게끔 목재에 불을 지펴 물심양면으로 도움을 주었다고 합니다. 이를 계기로 북촌댁은 사람들의 신망을 얻었습니다.

    북촌댁의 뒷간은 흥미롭게도 담장 안과 밖 사이에 걸쳐져 있습니다. 이는 북촌댁 사람들은 물론 길 가는 사람들도 급할 때 누구나 뒷간 사용을 사용할 수 있도록 배려하여 제작한 것이라고 합니다.
     


      

    안채, 사랑채, 큰 사랑채, 대문간채, 사당 등 두루 갖춘 전형적인 사대부가의 면모를 보여주는 북촌댁 중에서작은 사랑방인 수신와는 어렵게 사는 이웃을 의식해 가장 작은 규모로 지어졌으며북촌댁을 지은 류사춘의 증손인 류도성의 별호이기도 합니다.

    대부분의 양반가의 노비들과 달리, 북촌댁의 노비들은 외거노비로 인근 초가집에 살게 해주며 그들이 별도의 일상을 꾸릴 수 있도록 배려를 해주었습니다.
      
    선대의 마음 씀씀이를 물려받아 7대에 걸쳐 나눔과 베풂을 실천해온 북촌댁, 지금까지 사랑받아온 하회마을의 명문가에는 다 이유가 있는 것 같습니다.

    [출처] 사이언스올



    #북촌댁 #안동 #베풂

  • 김금덕
    2020-0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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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자가 인심얻기는 쉽지 않은데 나눔과 겸손과 배려를 실천한 위대한 가문입니다.
  • 꿀체리
    2020-01-12

    삭제

    부를 멋있게 활용하는 사람이 되고싶네요ㅎ 일단 벌고ㅋㅋ
  • 바이너리원
    2020-0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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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도 여유되면 저런 덕을 쌓고 싶다. ㅜㅜ 작은거부터라도
  • 미림이
    2020-0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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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비에게 저런 대우라니... 현대 재벌보다 낫다...
  • 정호맘
    2020-0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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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멋있는 마음가짐이에요~~ 이런 가문이 많았으면 합니다ㅜㅠ
  • 서용칠
    2020-0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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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누어주고도 주었다는 마음을 일으키며 자랑한다면 않주니만 못한것이다
  • 서용칠
    2020-01-09

    삭제

    나누어주고도 주었다는 마음을 일으키며 자랑한다면 않주니만 못한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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