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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살이 20년 차 네팔인 올리 저건나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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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행복한가 에디터♥ 입니다.
이번 2020년의 마지막 화제의 인물은 인천 부평에서 인도 음식점을 운영하고 있는 사장님, '올리 저건나트'씨 입니다!
여러분은 인도 음식점에 가보신적이 있나요?
보통 가면 현지인분들이 있으시죠. 그분들의 사연이 궁금해 본 적 있으신가요?
행복한가 에디터가 자주 가는 단골 인도 음식점 사장님을 직접 만나고 왔습니다. 유창한 한국어 실력의 사장님과 즐거운 인터뷰 함께 보시죠~^^
Q. 안녕하세요. 자기소개 부탁드릴게요!
저는 네팔이라는 나라에서, 20년 전에 한국에 왔던 올리 저건나트라고 합니다. 지금 현재 ‘비하니’ 네팔 인도 음식점 인천 부평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반갑습니다.
Q. 한국에 어떻게 오게 되었나요?
제가 친구소개로 네팔의 외국어 대학교에서 한국어를 공부하게 되었고요, 그 후에 한국에 와서 2년 동안 경희대학교에서 어학연수를 하게 되었습니다. 공부할 때 제가 여러 비즈니스 하는 사람을 만났어요. 그리고 같이 무역하며 일하다가 한국에 정착하게 되었습니다. 2007년도에 시작했어요.
▲2008년 인천신문에 실린 저건나트 이야기
Q. 한국에서 네팔 인도 음식점을 하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요?
제가 네팔에서 무역했거든요. 네팔 물건을 한국에 보내고요. 그리고 한국에 물건도 네팔에 유통해볼까 생각했는데 여러 가지로 어려움이 있었어요. 그리고 당시 네팔의 상황이 좋지 않았어요. 그런 상황에서 제가 아는 한국이라는 나라는 너무 좋았어요. 한국 분들 성실하고 열심히 하고요. 제가 배울 점이 많았어요. 그래서 한국에 가면 어떨까 생각하게 됐고 바로 실행에 옮겨 부평에 정착하게 되었어요. 그리고 바로 네팔 인도 음식점을 차렸죠. 저희 가게를 통해서 네팔의 문화를 한국에 알리고 싶었어요.
네팔 가고 싶은 분들이 저희 가게 오셔서 음식도 드시고, 현지 정보도 많이 물어보시고요. 또 어떤 분은 현지인 음식을 해달라고 하시더라고요. 이런 게 재밌어요. 좋아요. 그리고 네팔을 다녀오신 손님은 대화해보면 그 느낌이 달라요.
▲'비하니'에 장식된 네팔의 에버레스트산과 카트만두 사진
Q. 언제 가족이 가장 그리우셔요?
일 끝나고 집에 가거나, 조금 몸이 안 좋거나, 조금 상처를 받을 때 집을 그리워합니다. 메신저를 통해서 가족과 채팅하고 화상통화를 합니다. 어떻게 보면 가족과 소통하는데 저에게는 ‘약’입니다. 머리 아프거나 할 때 와이프한테 화가 난 이야기하고 조잘조잘 대다 보면 아픈 것이 사라집니다. 어려울 때 심심할 때 혼자 있을 때 무슨 일이 있을 때 식구들을 그리워합니다.
Q. 가족에게 고마운 부분은 무엇인가요? 네팔에 있는 가족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요?
가족에게 고마운 점은 정말 많아요. 와이프는 제가 한국에서 번 돈을 관리를 참 잘해줘요. 와이프는 아이들 봐주느라 고생도 참 많고요. 건강하게 자라고 있는 아이들이 공부도 열심히 잘하고 있고요. 여러 가지로 반은 제가 하고 반은 와이프가 잘 하는 것 같아요.
Q. 가족으로서 저건나트님은 어떤 사람인가요?
얼마 전에 와이프와 아이들이 한국에 왔었어요. 와이프가 저에게 가끔 하는 말이 있어요. ‘당신은 우리보다 식당을 더 좋아한다!’라고요. 저는 식구들도 물론 좋아요. 근데 와이프랑 싸우고 손님을 안 받으면 안 되잖아요? 와이프도 제 맘을 알 거라고 생각해요. 식구들이 잘 지내면 저도 스트레스 안 받고 즐겁게 일을 할 수 있고요. 그래서 그 부분에 대해서는 저는 가족들에게 잘했고 도움을 주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Q. 네팔에 있는 가족분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요?
네팔에서 와이프와 아들 두 명 총 셋이 살고 있거든요. 저는 떨어져서 한국에서 지내고요. 지금처럼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어요. 저는 와이프나 아이들에게 아무런 불만이 없어요. 다만 그분들이 저에게 불만이 있을 거예요. 하하하. 같이 있지 않아서요. 저는 막내아들이 시험 기간일 때 네팔에 항상 과거든요. 한번 제가 못 갔어요. 근데 그해 시험점수가 많이 떨어졌어요. 제가 네팔 집에 가면 깨워 놓고 공부하도록 옆에 앉아있거든요. 아들이 핸드폰도 못 보게 했어요. 옆에서 잠도 못 자게 가만히 공부할 때까지 기다리고 있어야 해요. 그런 것들이 저도 너무 어렵지만, 또 너무 그립습니다. 우리나라가 조금 가난해서 우리가 같이 있는 행복이냐, 돈을 버는 행복이냐 이런 이야기를 많이 하거든요. 저는 지금 돈을 버는 것을 선택했어요. 왜냐면 제 아들들이 다음에 외국이 안 가고 네팔에서 잘 살 수 있게끔 하고 싶어요. 제가 행복을 위해 열심히 일하며 돈을 버는 선택을 했어요. 솔직히 식구들이 조금 어려워도 같이 사는 것은 아주 행복한 것 같아요. 행복은 돈이 없어도 어려워도 그 순간순간에 행복할 수 있어요. 돈이 있어도 부자도 행복함이 없는 사람이 있어요. 반드시 행복을 찾아야 하고, 찾을 수 있어요.
Q. 저건나트님에게 가장 큰 '행복'이란 무엇인가요?
행복에 관한 생각은 일주일 마다 바뀌는 것 같아요. 하하하. 제일 좋은 것은 어려운 상황에서도 행복을 찾는 것이에요. 저는 식구랑 떨어져 살지만, 조금 돈이 없더라도 식구랑 다 모여 사는 것만큼 행복한 것은 없다고 생각해요. 근데 아픈데 돈이 없다는 상황을 가정해보면 또 어떡하지? 싶거든요. 돈도 어느 정도 있어야 어려운 사람들과도 나눌 수 있을 것 같아요. 욕심 없이 식구와 같이 쓸 수 있으면 아주 많이 행복하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지금은 일 년에 한 번씩 네팔에 가고, 두세 달 정도 있다가 와요. 그 함께하는 시간이 정말 금방 갑니다.
▲저건나트 님의 가족사진 (가족 모임 때)
Q. 사장님 혹시 한국에서 한가한 시간에 취미생활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좋아하는 한국음식은요?
저는 지금 나이도 먹고 힘들기도 해요. 그래서 집에서 주로 쉬는데 요즘에는 소셜미디어를 많이 해요. 한국 음식 다 먹어요. 제 입맛에 잘 맞고 가리는 것 없이 다 좋아해요.
저는 손님이 제 친구예요. 한가한 시간에 친구 만나고 그런 게 아니고요. 그래서 저는 가게에 가는 게 즐거워요. 또 손님들한테 힘을 많이 얻어요. 제가 어려운 일이 있으면 손님한테도 이야기해요. 좀 친해진 손님들한테요. 저는 ‘형’들이 많아요. 제 개인적인 이야기도 하고 그런 게 있는데 참 재밌어요. 어떤 사람은 어려우면 저한테 와요. 저한테 이야기하고 나면 다 풀린데요. 하하하.
Q. 마지막으로 가족생활중심 사단법인 행복한가 가족여러분들께 한말씀 부탁드립니다.
돈이 있거나 없거나 행복은 얻을 수 있어요. 자기가 가진 것 조금이라도 나눌 수 있어요. 돈이 많은 사람들이 기부하는 것도 좋지만요, 돈이 없는 사람이 조금이라도 돈을 기부하는 것은 심적으로 큰일이라고 생각하고요. 사람이 살 수 있는 부분은 행복밖에 없어요. 어려운 상황에서도 행복을 잡을 수 있으니 그것을 찾으려고 노력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저희 아버지가 이런 말씀을 매일 하셨어요. 너희 남매가 매일 치고 받고 싸워도, 아빠가 잔소리 한다고 싫다고 해도 언젠간 이 순간이 사무치게 그리워질 거라고요. 그때가서 질질짜며 울지말고 지금 잘하라고요!^^~ 저건나트 사장님 말씀처럼 가족과 함께 할 수 있는 것이 제일 행복하다는 것 잊지 않아야겠습니다.
이상 행복한가 에디터♥ 였습니다.
네팔 인도음식점 ‘비하니’는 인천 부평역 인근에 위치합니다.
● 비하니/ 매일 11:30 - 23:00 연중무휴
위치 : 인천 부평구 광장로24번길 13 신성빌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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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리저건나트 #네팔 #음식점사장님
포항 다둥이 엄마의 특별한 교육 이야기
안녕하세요, 행복한가 에디터♥ 입니다. 이번 2020년 12월 넷째 주 화제의 인물은 학교를 졸업하자마자 남편과 귀농하여 자연 속에서 4남매 아이들을 키우고 있는 포항댁 최은미님 입니다! 여러분은 시골에 살고 싶다고 생각해본 적이 있나요? 저는 화려한 도시에 살다가 조용한 시골에 가면 잘 살아갈 수 있을지 막막한 생각뿐인데요. 이번 12월 넷째 주 화제의 인물 최은미 님이 포항의 자연 속에서 아이들을 키우는 특별한 교육 이야기를 들려드리고자 합니다. 그 이야기 속으로 함께 가보시죠~!^^ Q. 안녕하세요. 자기소개 부탁드릴게요:) 안녕하세요, 저는 포항시에서 농사를 짓고 아이 넷을 키우고 있는 34살 최은미라고 합니다. 저는 경기도에서 쭉 살았고, 남편은 대구사람이에요. Q. 만나서 반갑습니다!^^요즘 같은 저출산 시대에 자녀를 넷이나 낳으시다니 진정한 애국자이십니다!!! 네, 지난 10월에 넷째를 출산했어요. 위의 사진에는 넷째가 배 속에 있을 때 사진이에요. 저는 어릴 때부터 항상 식구가 많은 북적북적한 집에서 살아서 저도 그런 가정을 꾸리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제가 4남매 중 셋째 거든요^^ 최 씨네 셋째딸 다들 아시죠?^^~ 하하하. 제 또래 친구들과 비교해서 결혼을 일찍 한 편이에요. Q. 캬~~너무 대단하셔요~!!! 현재의 남편을 어떻게 만나게 되신거에요? 대학 생활을 할 때 한 번은 꼭 외국에 나가 선교 봉사 활동을 하고 싶었어요. 막연하게 생각만 하던 중 졸업을 한 학기 남기고 개인적으로 힘든 일이 겹치면서 휴학을 하고 1년 선교여행을 떠나게 되었어요. 그리고 그곳에서 지금의 남편을 만났어요. 당시 프로포즈를 하면서 같이 농사를 짓자고 하더라고요. 제가 성격이 좀 단순해서 많은 생각 안 하고 오케이 했어요^^ 농장 운영은 언젠가 다시 하게 될 해외선교 현지 자립을 위한 생존기술 훈련이에요. 그래서 양계장도 하고 있어요. 당시 웨딩 촬영도 저희 스타일로 양계장에서 직접 촬영했거든요. Q. 와우~~! 양계장 웨딩촬영이라니, 정말 놀랍네요!!^^ ! 최은미 부부의 양계장 웨딩사진 네 사진을 보고 많이들 놀라며 즐거워해 주셨어요. 이 사진을 결혼식장 입구에 놓았었거든요 ^^~ 저희가 양계장을 운영하기 위해 계속 배우러 다녔거든요. 매일 보는 닭들이 친근하고 귀엽기도 해서, 웨딩 촬영을 양계장에서 했어요. Q. 너무나도 특별하네요!^^ 캬아~그렇게 부부에게 찾아온 소중한 4남매! 다둥이어서 좋은 점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일단 웃을 일이 정말 많아요. 저희 남편이 결혼 초기에 아이를 6명 낳자고 했거든요. 근데 첫째 둘째를 연년생으로 낳고 키우면서 너무 힘들었어요. 그래서 두 아이만 잘 키워보자 했는데 아이들이 어느 정도 크니 조금 아쉽더라구요. 그래서 큰 맘 먹고 셋째를 낳았는데, 셋째 7개월 때 넷째가 정말 예상치 못하게 기적처럼 저희에게 왔어요. 처음에는 너무 놀라고 당황스러웠지만, 지금은 그렇게 우연히 아이가 생긴 것이 너무 감사하네요. 저희가 계획했다면 막내는 만나지 못했을 거예요. 연년생 두 세트로 힘들 때도 있지만 웃을 일이 더 많은 것 같아요^^ Q. 아이들 소개 좀 해주세요~! 어떤 아이들인가요?^^넷째 새언이 100일날 4남매의 모습 저희 아이들은 외모도 다 제각각이고 성경도 달라 너무 재밌어요. 첫째 딸 서하는 8살인데 독특한 매력이 있어요. 자기주장이 강하고 눈치를 보지 않는 성격이예요. 또 저를 닮아 개그 본능이 있어서 항상 주변 사람들을 웃게 만들어요. 둘째 딸 연서는 6살인데 여성스럽고 섬세한 면이 많아요. 또 마음이 따뜻해서 엄마를 잘 도와줘요. 셋째 딸 은새는 18개월이에요. 이때 아이들이 모두 그렇겠지만 너무 사랑스러워요. 겁이 없고 몸 쓰는 걸 좋아해서 자주 넘어지고 다쳐요. 요즘 셋째 쫓아다니느라 정신이 없네요. 막내아들 새언이는 이제 4개월밖에 안 돼서 성격이 어떨지는 더 두고 봐야 할 거 같아요. 기대되네요. 지금은 보고만 있어도 힐링이 됩니다~^^ Q. 4남매를 양육하는 특별한 비결이 있다면 알려주세요!! 비결이라고 말하기 부끄럽지만 그냥 요즘 아이 넷을 키우며 노력하는 것은 ’욕심을 내려놓는 것‘이에요. 저희는 아이들을 홈스쿨하고 있어요. 사실 아이 넷을 집에서 돌보면서 아내로서 엄마로서 제 역할을 잘해 내는 건 쉽지 않아요. 저는 슈퍼우먼이 아니거든요. 그런데 제 마음에 잘하려고 하는 부담감이 있으면 일상이 불행해 지더라구요. 남편을 잡고, 아이들을 닦달하고. 그래서 그냥 포기했어요. 깨끗한 집, 우아한 육아, 정돈된 일상 같은 것들을 포기하니 오히려 마음이 편안해요. 그리고 그런 것들보다 더 중요한 일을 할 수 있는 것 같아요. 아이들과 눈 한 번 더 맞추고 안아주고 이야기 나누는 그런 것들이요.^^산책하는 세 자매와 미끄럼틀에서 놀고 있는 아이들 Q. 홈스쿨링과 기존 공교육을 받는 아이들의 차이점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말 그대로 홈스쿨링이기 때문에 각 가정마다 차이는 있을 거 같아요. 일단 저희 아이들은 주도적으로 공부하고 노는 것이 가장 큰 특징인 것 같아요. 공교육은 선생님의 지도아래 정해진 규칙과 틀 안에서 학습한다면, 홈스쿨링 하는 아이들은 그 틀에서 좀 더 자유롭죠. 그리고 학교에 다니는 아이들보다 공부를 하지 않는 것으로 보여요. 정확히 말씀드리면 책상에 앉아 공부하는 시간은 짧지만, 삶에서 많은 걸 배워요. 아빠의 농사일을 도우며, 엄마와 집안일을 하며, 또 마을 이웃과 어르신들에게서 지혜를 배워요. 그중에서도 아이들의 가장 좋은 선생님은 자연인 거 같아요. 특별한 것이 없어도 자연을 벗으로 삼아 이 놀이 저 놀이 하며 끊임없이 놀 수 있는 게 우리 아이들의 특기에요. 그 속에서 책상에 앉아 배울 수 없는 수많은 지혜와 지식을 몸으로 직접 느끼고 깨달으며 배우고 있어요. 또 아이들의 다양성을 존중해주는 게 큰 차이인 것 같아요. 학습을 강요하거나 지식을 주입하는 대신 격려하고 칭찬해주는 분위기 속에서 스스로 좋아하는 것 하고 싶은 것을 찾아가도록 돕고 있어요. 홈스쿨링 수업 중 산책하는 아이들과 아빠와 함께 밭을 가꾸는 아이 Q. 이런 교육방식이 있었다니, 저도 어릴 때로 돌아간다면 꼭 그렇게 배우고 싶은 마음이 드네요... 홈스쿨링을 그룹으로 하는 방식은 무엇인가요? 네, 이 방식은 저희 공동체 안에서 홈스쿨링을 기반으로 대안학교처럼 운영하고 있 거든요. 저희가 이렇게 할 수 있는 건 여기가 시골이고, 뛰어놀 수 있는 자연이 있고 공동체에서 같이 하기 때문에 할 수 있는 것 같아요. 아이 혼자서 1:1로 한다고 하면 여러 가지 어려운 부분들이 있을 거예요. 홈스쿨 + 대안학교인 셈이죠. 공교육처럼 학교에 아이들을 보내고 쉴 수가 없어요. 엄마, 아빠가 완전히 개입돼서 함께하는 교육이에요. 가정, 학교, 노동의 현장이 연결되어 통일된 가치관으로 아이들을 가르치기 때문에 아이들이 혼란스럽지 않다는 장점이 있는 거 같아요. Q. 엄마, 아빠가 모두 선생님이 되는 것이군요! 맞아요. 엄마, 아빠가 모두 선생님이에요. 수업은 글쓰기, 기타, 목공, 텃밭 가꾸기, 역사, 양계, 도서관 책 읽기 등 정말 다양한 수업이 있어요. 공교육은 학년이 나누어져 있잖아요? 그래서 또래끼리 어울리는데 여기는 제일 어린 5살부터 10살까지 있는데 수준별 수업을 제외하고 함께 어울려요. 나이와 성별이 다양하다 보니 여기서 오는 장점이 엄청나요. 자기들끼리 스스로 얼마나 잘 돌보고 가르치는지 몰라요. 동생들을 기다려주고 도와주면서 자신보다 약한 사람을 배려하고 사랑하는 마음을 자연스럽게 배워가고 있어요. Q. 엄마 최은미 님의 앞으로의 꿈은 무엇인가요? 이런 질문 정말 오랜만에 들어보네요. 엄마로서의 꿈은 당연히 아이들이 잘 자라는 거 아닐까요?^^ 아까 말씀드렸듯이 아이들을 홈스쿨링 하고 있는데 그 이유가 요즘 우리 아이들이 어른들이 만들어놓은 환경과 수많은 경쟁 속에서 너무 고통받는다고 생각해요. 저는 그저 아이들이 아이답게 어린 시절 누릴 수 있는 행복을 누리며 살았으면 해요. 지금 저희 아이들이 딱 그렇게 크고 있는데 때로는 저도 공교육을 받았던 사람이라서 너무 놀기만 하는 거 아닌가 걱정도 되지만, 정말 신기하게도 공부하라 하지 않아도 아이들은 스스로 자연에서 배우고 스스로 책을 읽고 싶어 한글을 공부하고 함께 어울리며 관계 맺는 법을 배우더라고요. 물론 엄마로서 힘들지 않다면 거짓말이겠지만 조금 힘들더라고 아이를 바르게 키우는 것은 그 무엇보다 가치 있는 일인 것 같아요. 아직 갈 길이 멀지만, 우리 아이들이 바르게 자라서 누군가에게 힘이 되고 세상에 필요한 사람이 되도록 옆에서 사랑으로 돕고 싶어요.염소 목장에서 먹이를 주며 웃고 있는 첫째 서하 Q. 틀림없이 세상에 빛을 내는 특별한 아이들로 성장할 거예요!^^ 마지막으로 가족생활중심 행복한가 가족분들께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저는 행복한 가정을 위해 꼭 필요한 것이 ’인내’와 ’희생’이라고 생각해요. 서로를 참고 견디고 있는 그대로 인정해 주는 것이 정말 어렵고 고통스럽지만 그게 사랑인 것 같아요. 부족한 점이 많은 저의 이야기를 들어주셔서 감사해요. 힘들고 어려운 요즘이지만 항상 몸과 마음이 건강하시길 기도해요. 공교육을 받은 저로서는 산과 들을 뛰어다니며 즐겁게 공부하는 우리 4남매가 마냥 부럽기만 합니다. 4남매 친구들 나이 때에 저는 어떤 세상을 보았을까요? 아마도 많이 달랐겠지요?^^ 포항댁 다둥이 엄마 최은미 님 가족을 행복한가가 응원하겠습니다~!^^ 이상 행복한가 에디터♥ 였습니다. ‘착한아빠농장’의 더 많은 이야기가 궁금하시다면 아래의 링크를 참고해주세요^^ 착한아빠농장 단호박 재배 장면과 인체무해한 친환경 농약 제조 사진 ● 착한아빠농장 페이스북 : https://www.facebook.com/goodfathersfarm ● 착한아빠농장 인스타그램 : https://www.instagram.com/gooddaddys_farming (구매관련 문의는 인스타그램 DM으로 연락주세요^^) ♥ 행복한가의 모든 콘텐츠는 여러분의 소중한 지지와 후원으로 만들어집니다 ♥
7년 수험생을 버티게 해준 원천, 가족과의 따뜻한 밥상
안녕하세요, 행복한가 에디터♥ 입니다. 이번 2021년 첫번째 화제의 인물을 만나볼까요?행복한가 2021년 1월 첫째 주 화제의 인물은 7년 동안 쉼 없이 달려오고 공기업 취업을 뽀갠(?) 류 데이지님 입니다! 여러분은 한가지 목표를 향해 얼마나 오래 달릴 수 있으신가요? 그것을 이루는 과정에 너무도 많은 시련과 난관에 부딪힐 텐데요. 7년 동안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달린 끝에 합격이라는 결실을 보게 된 류 데이지 님의 이야기를 소개하려고 합니다. 데이지님을 오래 버티게 한 원천이 무엇인지 함께 이야기 들어보실까요?^^^ Q.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32살에 처음으로 취업을 뽀갠(?) 갑남을녀에서 ‘을’을 맡은 보통 사람 류데이지 라고 합니다. 반갑습니다^^ 지금은 평범한 공기업 회사원이지만 불과 2년 전까지 방구석 수험생이었습니다. 무경력, 30대 여자 사람의 이야기로 ‘요즘 취업이 정말 늦다더니 그렇나 보군’하고 들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Q. 정말 늦은 취업이셨네요! 류 데이지 님의 20대는 무엇을 하고 지내셨나요? 저의 20대는 대학교 3년을 제외한 7년이 모두 수험생이었어요. 7년이라 하면 아이가 태어나 초등학교에 갈 정도의 긴 시간이지만 수험생은 자칫 삐끗하면 장수생이 되고, 그러면 시간이 어떻게 가는지 모르니 세상과 귀를 닫고 보는 눈이 수험이 전부가 되죠. 수험이 꿈을 이루는 과정이 되어야 하는데, 타성에 젓다 보니 일상이 되었던 것 같아요. 흔히 시험 신(神)이 있다고 하던데, 정말 그런 것 같더라고요. 한 해 농사를 성실하게 않으면 기가 막히게 알고 떨어뜨리더라고요. Q. 정말 많이 힘드셨을 것 같아요. 시험을 준비하면서 가장 힘든 순간은 언제였는지, 그리고 어떻게 이겨냈는지 궁금합니다. 제 동생은 경찰 시험을 준비하고 있었는데, 사실 동생의 면접 탈락이 가장 힘들었어요. 제 면접 탈락은 아무렇지 않더라고요. 얼마나 마음이 아플까, 누나로서 내가 해줄 말도 없어서 미안하다는 생각이 가장 크게 들었어요. 그리고 저의 힘든 부분에 대해서는 제대로 이겨내지 못했어요. 상처는 상처대로 다 받았고요. 고통을 이겨낼 만큼 강인한 정신력도 아니었고, 특별한 방법도 몰랐어요. 지칠 때마다 의도적으로 걷고, 햇빛을 보려고 노력했어요. 자기 전엔 명상도 해보고요. 7년 동안 말없이 곁에 있어 준 친구들도, 부모님도 그들이 곁에 있어 주어서 버틸 수 있었던 것 같아요. Q. 그럼 지금도 수험생이신가요? 아, 지금은 3년 차 공기업 직장인이에요. 면접 탈락 후 1년이든 2년이든 더 하면 합격을 할 수야 있겠지만, 얼른 세상으로 당당히 나오고 싶었어요. 글짓기상을 받은 것, 대학교 장학금 받은 것, 운전면허 취득 등 내가 한 성취기록이 7년 수험에 모두 다 사용되어서 성취감이 바닥났었거든요. 사람들은 “30대 여자가 취업할 수 있겠냐?”, “회사공채는 반드시 내정자가 있다”라고 했지만 모두 다 사실이 아니었어요. 나이/학벌/경력 묻지도 따지지도 않는 블라인드 채용이었으며, 내정자는 정말 없는 공정한 절차였어요. 해보지 않으면 내가 가진 능력치를 몰랐을 것이고, 정말 해 보이는 과정이 짜릿했어요. 지금 두 대의 모니터로 근무할 수 있는 환경에 너무 기뻐요.▲듀얼 모니터로 근무할 수 있어 기쁘다는 류데이지 Q. 류 데이지님은 다시 20대로 돌아가면 어떤 선택을 하시겠나요? 저는 다시 돌아가도 같은 선택을 할 거예요. 이 대화를 같이 시험을 준비하던 선배랑 몇 번이나 한 적이 있어요. 그때마다 둘 다 ‘YES' 현재 그 선배랑 저는 같이 시험을 통과하지 못하고 다른 길을 걷고 있지만, 저의 성격을 고려했을 때 다시 시험을 친다면 고시/임용/공시 이 3가지 중에 선택했을 것 같지만 제가 과거에 시험 준비했을 때의 했던 ‘거만’,‘나태’의 실수를 반복하지 않게 집중해서 공부할 것 같아요. ▲캠스터디를 활용하여 공부하는 류 데이지 Q. 수험생에게 절대 하면 안 되는 말은 무엇인가요? ‘시험 준비 그만두고 차라리, [something]이나 하지 그래? ‘에요. 들어봤던 썸싱은 아무 데나 취업, 어린이집 교사, 사회복지사, 선생님, 결혼…. 잉? 수험생 지인이 모임에 나왔다면, 그 수험생은 그날 공부 진도는 뒤로 제쳐두고, 정말 오랜만에 마실 나온 거예요. 오래 공부한다고 남들보다 뒤처진 것도 아니고, 잘못한 것도 아니에요. 그러니 가벼운 말씀 대신 맛있는 밥 사주세요. Q. 지금도 열심히 공부하는 수험생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요? 제가 합격생도 아니어서 말씀드리기 정말 조심스럽지만, 수험생이라고 절대 주눅 들지 않으셨으면 좋겠어요. 제가 했던 가장 큰 실수가 ’전년도 강의 구매, 할인을 많이 하는 선생님 교재 구매, 독서실이 아니라 도서관, 무료강의‘ 이런 식으로 하나둘 돌아가다 보니 결과적으로 늦어지더라고요. 누가 뭐라 한 것이 절대 아니었는데 말이죠. 돈을 쓸 땐 요긴하게 쓰고, 타인과의 관계 스트레스도 조절하고 건강하게 공부하셨으면 좋겠어요. Q. 수험생과 회사원 뭐가 더 좋은가요? 무조건 회사원이 더 좋긴해요. 수험생은 월-토 10h 근무인데, 회사원은 월-금 8h 근무잖아요. 주말이 길어서 잠도 늘어지게 잘 수도 있어요. 그런데, 회사 들어오면 모든 시험과 작별이라 생각했는데 그렇진 않더라고요. Q. 류 데이지님에게 가장 큰 '행복'이란 무엇인가요? 토요일 저녁 가족 구성원 모두 자기 자리에 반드시 안착하여 엄마가 구워주시는 삼겹살에 미나리, 상추, 깻잎을 잔뜩 얹혀 한입에 크게 오물오물 먹는 것이요. 저 혼자 삼겹살을 먹으면 맛이 없어요. 전제조건은 우리 가족 4명이 모이고 삼겹살에 쌈을 크게 만들어서 한입에 먹어야 해요. 삼겹살은 사실 부수적인 것, 낯간지러운 말 못 하는 사람들 4명이 모여 따듯한 밥 한 끼 먹는 것이 사랑한다는 비언어적 표현이거든요. 그렇게 같이 먹는 밥들이 인생의 보호막이 된 것 같아요. 지금은 가족 구성원 신규 1명 더 영입하여 인생 보호막에 방수기능까지 더 해졌어요. 얼마 전에 결혼했거든요:)▲엄마가 정성스레 차려주신 따뜻한 밥상 Q. 부모님께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요? 제가 수험생 자녀를 둔 부모로, 오랫동안 엄마를 속박했던 것 같아요. 시험 날이 다가오면 제가 좋아하는 아귀찜이 밥상에 자주 올라왔어요. 처음엔 맛있어서 좋았지만 매년 반복될수록 엄마가 나의 눈치를 보고 편히 쉬지 못하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저의 길고 긴 수험생으로서의 20대를 지켜보는 부모님도 속이 많이 문드러지셨을 것이에요. 어디서 누군가의 합격 소식을 들으셨을 때 움츠러드는 어깨와 자녀 취업 준비 질문을 애써 외면하시고 급하게 화제를 돌리셨을 거예요. 어쨌든, 시험이 중지되었고, 엄마는 더는 아귀찜을 자주 만들어주시지 않았어요. 그리고 취업 후 2년이 지난 지금, 부모님은 마치 언제 그랬냐는 것처럼 절에 가는 대신 산으로 놀러 가셔요. 지금이라도 마음 편히 자유롭게 사는 것 같아 보기 좋아요. 그리고 그때 정말 감사했다고 말씀드리고 싶어요.▲부모님과 함께하는 눈길 산행 Q. 마지막으로 가족생활 중심 사단법인 행복한가 여러분께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저의 이야기를 알코올을 섭취하고도 이렇게 털어놓은 적이 없었는데, 인터뷰라는 새로운 경험으로 글로 엮어주시니 감사합니다. 저의 역사를 다시금 정리하고 돌아보는 계기가 된 것 같고요. 지나고 보니 가족과 먹었던 사소한 밥상들이 저를 버티게 해주는 원천이었던 것 같아요. 오늘도 가족들과 따뜻하게 맛있는 밥 챙겨 드세요. 데이지 님의 긴 마라톤에서 지치지 않게 중간마다 물을 주신 분들이 바로 부모님, 그리고 오아시스 같았던 물은 엄마가 차려주신 소소하지만 따뜻했던 밥상이었습니다. 여러분도 이번 주에는 가족들과 함께 따뜻한 밥 한 끼 하시는 것이 어떨까요? 마라톤 우승 여부를 떠나 지칠 때 잠깐 들른 오아시스는 평생토록 여러분들의 가슴속에 기억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상 행복한가 에디터♥ 였습니다. ♥ 행복한가의 모든 콘텐츠는 여러분의 소중한 지지와 후원으로 만들어집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