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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년 수험생을 버티게 해준 원천, 가족과의 따뜻한 밥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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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행복한가 에디터♥ 입니다.
이번 2021년 첫번째 화제의 인물을 만나볼까요?
행복한가 2021년 1월 첫째 주 화제의 인물은 7년 동안 쉼 없이 달려오고 공기업 취업을 뽀갠(?) 류 데이지님 입니다!
여러분은 한가지 목표를 향해 얼마나 오래 달릴 수 있으신가요?그것을 이루는 과정에 너무도 많은 시련과 난관에 부딪힐 텐데요. 7년 동안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달린 끝에 합격이라는 결실을 보게 된 류 데이지 님의 이야기를 소개하려고 합니다. 데이지님을 오래 버티게 한 원천이 무엇인지 함께 이야기 들어보실까요?^^^
Q.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32살에 처음으로 취업을 뽀갠(?) 갑남을녀에서 ‘을’을 맡은 보통 사람 류데이지 라고 합니다. 반갑습니다^^ 지금은 평범한 공기업 회사원이지만 불과 2년 전까지 방구석 수험생이었습니다. 무경력, 30대 여자 사람의 이야기로 ‘요즘 취업이 정말 늦다더니 그렇나 보군’하고 들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Q. 정말 늦은 취업이셨네요! 류 데이지 님의 20대는 무엇을 하고 지내셨나요?
저의 20대는 대학교 3년을 제외한 7년이 모두 수험생이었어요. 7년이라 하면 아이가 태어나 초등학교에 갈 정도의 긴 시간이지만 수험생은 자칫 삐끗하면 장수생이 되고, 그러면 시간이 어떻게 가는지 모르니 세상과 귀를 닫고 보는 눈이 수험이 전부가 되죠. 수험이 꿈을 이루는 과정이 되어야 하는데, 타성에 젓다 보니 일상이 되었던 것 같아요. 흔히 시험 신(神)이 있다고 하던데, 정말 그런 것 같더라고요. 한 해 농사를 성실하게 않으면 기가 막히게 알고 떨어뜨리더라고요.
Q. 정말 많이 힘드셨을 것 같아요. 시험을 준비하면서 가장 힘든 순간은 언제였는지, 그리고 어떻게 이겨냈는지 궁금합니다.
제 동생은 경찰 시험을 준비하고 있었는데, 사실 동생의 면접 탈락이 가장 힘들었어요. 제 면접 탈락은 아무렇지 않더라고요. 얼마나 마음이 아플까, 누나로서 내가 해줄 말도 없어서 미안하다는 생각이 가장 크게 들었어요.
그리고 저의 힘든 부분에 대해서는 제대로 이겨내지 못했어요. 상처는 상처대로 다 받았고요. 고통을 이겨낼 만큼 강인한 정신력도 아니었고, 특별한 방법도 몰랐어요. 지칠 때마다 의도적으로 걷고, 햇빛을 보려고 노력했어요. 자기 전엔 명상도 해보고요. 7년 동안 말없이 곁에 있어 준 친구들도, 부모님도 그들이 곁에 있어 주어서 버틸 수 있었던 것 같아요.
Q. 그럼 지금도 수험생이신가요?
아, 지금은 3년 차 공기업 직장인이에요. 면접 탈락 후 1년이든 2년이든 더 하면 합격을 할 수야 있겠지만, 얼른 세상으로 당당히 나오고 싶었어요. 글짓기상을 받은 것, 대학교 장학금 받은 것, 운전면허 취득 등 내가 한 성취기록이 7년 수험에 모두 다 사용되어서 성취감이 바닥났었거든요. 사람들은 “30대 여자가 취업할 수 있겠냐?”, “회사공채는 반드시 내정자가 있다”라고 했지만 모두 다 사실이 아니었어요.
나이/학벌/경력 묻지도 따지지도 않는 블라인드 채용이었으며, 내정자는 정말 없는 공정한 절차였어요. 해보지 않으면 내가 가진 능력치를 몰랐을 것이고, 정말 해 보이는 과정이 짜릿했어요. 지금 두 대의 모니터로 근무할 수 있는 환경에 너무 기뻐요.
▲듀얼 모니터로 근무할 수 있어 기쁘다는 류데이지
Q. 류 데이지님은 다시 20대로 돌아가면 어떤 선택을 하시겠나요?
저는 다시 돌아가도 같은 선택을 할 거예요. 이 대화를 같이 시험을 준비하던 선배랑 몇 번이나 한 적이 있어요. 그때마다 둘 다 ‘YES'
현재 그 선배랑 저는 같이 시험을 통과하지 못하고 다른 길을 걷고 있지만, 저의 성격을 고려했을 때 다시 시험을 친다면 고시/임용/공시 이 3가지 중에 선택했을 것 같지만 제가 과거에 시험 준비했을 때의 했던 ‘거만’,‘나태’의 실수를 반복하지 않게 집중해서 공부할 것 같아요.
▲캠스터디를 활용하여 공부하는 류 데이지
Q. 수험생에게 절대 하면 안 되는 말은 무엇인가요?
‘시험 준비 그만두고 차라리, [something]이나 하지 그래? ‘에요.
들어봤던 썸싱은 아무 데나 취업, 어린이집 교사, 사회복지사, 선생님, 결혼…. 잉?
수험생 지인이 모임에 나왔다면, 그 수험생은 그날 공부 진도는 뒤로 제쳐두고, 정말 오랜만에 마실 나온 거예요. 오래 공부한다고 남들보다 뒤처진 것도 아니고, 잘못한 것도 아니에요. 그러니 가벼운 말씀 대신 맛있는 밥 사주세요.
Q. 지금도 열심히 공부하는 수험생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요?
제가 합격생도 아니어서 말씀드리기 정말 조심스럽지만, 수험생이라고 절대 주눅 들지 않으셨으면 좋겠어요. 제가 했던 가장 큰 실수가 ’전년도 강의 구매, 할인을 많이 하는 선생님 교재 구매, 독서실이 아니라 도서관, 무료강의‘ 이런 식으로 하나둘 돌아가다 보니 결과적으로 늦어지더라고요. 누가 뭐라 한 것이 절대 아니었는데 말이죠. 돈을 쓸 땐 요긴하게 쓰고, 타인과의 관계 스트레스도 조절하고 건강하게 공부하셨으면 좋겠어요.
Q. 수험생과 회사원 뭐가 더 좋은가요?
무조건 회사원이 더 좋긴해요. 수험생은 월-토 10h 근무인데, 회사원은 월-금 8h 근무잖아요. 주말이 길어서 잠도 늘어지게 잘 수도 있어요.그런데, 회사 들어오면 모든 시험과 작별이라 생각했는데 그렇진 않더라고요.
Q. 류 데이지님에게 가장 큰 '행복'이란 무엇인가요?
토요일 저녁 가족 구성원 모두 자기 자리에 반드시 안착하여 엄마가 구워주시는 삼겹살에 미나리, 상추, 깻잎을 잔뜩 얹혀 한입에 크게 오물오물 먹는 것이요.
저 혼자 삼겹살을 먹으면 맛이 없어요. 전제조건은 우리 가족 4명이 모이고 삼겹살에 쌈을 크게 만들어서 한입에 먹어야 해요. 삼겹살은 사실 부수적인 것, 낯간지러운 말 못 하는 사람들 4명이 모여 따듯한 밥 한 끼 먹는 것이 사랑한다는 비언어적 표현이거든요. 그렇게 같이 먹는 밥들이 인생의 보호막이 된 것 같아요.
지금은 가족 구성원 신규 1명 더 영입하여 인생 보호막에 방수기능까지 더 해졌어요. 얼마 전에 결혼했거든요:)
▲엄마가 정성스레 차려주신 따뜻한 밥상
Q. 부모님께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요?
제가 수험생 자녀를 둔 부모로, 오랫동안 엄마를 속박했던 것 같아요.시험 날이 다가오면 제가 좋아하는 아귀찜이 밥상에 자주 올라왔어요. 처음엔 맛있어서 좋았지만 매년 반복될수록 엄마가 나의 눈치를 보고 편히 쉬지 못하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저의 길고 긴 수험생으로서의 20대를 지켜보는 부모님도 속이 많이 문드러지셨을 것이에요. 어디서 누군가의 합격 소식을 들으셨을 때 움츠러드는 어깨와 자녀 취업 준비 질문을 애써 외면하시고 급하게 화제를 돌리셨을 거예요.
어쨌든, 시험이 중지되었고, 엄마는 더는 아귀찜을 자주 만들어주시지 않았어요. 그리고 취업 후 2년이 지난 지금, 부모님은 마치 언제 그랬냐는 것처럼 절에 가는 대신 산으로 놀러 가셔요. 지금이라도 마음 편히 자유롭게 사는 것 같아 보기 좋아요.그리고 그때 정말 감사했다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부모님과 함께하는 눈길 산행
Q. 마지막으로 가족생활 중심 사단법인 행복한가 여러분께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저의 이야기를 알코올을 섭취하고도 이렇게 털어놓은 적이 없었는데, 인터뷰라는 새로운 경험으로 글로 엮어주시니 감사합니다. 저의 역사를 다시금 정리하고 돌아보는 계기가 된 것 같고요. 지나고 보니 가족과 먹었던 사소한 밥상들이 저를 버티게 해주는 원천이었던 것 같아요. 오늘도 가족들과 따뜻하게 맛있는 밥 챙겨 드세요.
데이지 님의 긴 마라톤에서 지치지 않게 중간마다 물을 주신 분들이 바로 부모님, 그리고 오아시스 같았던 물은 엄마가 차려주신 소소하지만 따뜻했던 밥상이었습니다. 여러분도 이번 주에는 가족들과 함께 따뜻한 밥 한 끼 하시는 것이 어떨까요? 마라톤 우승 여부를 떠나 지칠 때 잠깐 들른 오아시스는 평생토록 여러분들의 가슴속에 기억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상 행복한가 에디터♥ 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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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데이지 #수험생 #공기업합격
한국 살이 20년 차 네팔인 올리 저건나트
안녕하세요, 행복한가 에디터♥ 입니다. 이번 2020년의 마지막 화제의 인물은 인천 부평에서 인도 음식점을 운영하고 있는 사장님, '올리 저건나트'씨 입니다! 여러분은 인도 음식점에 가보신적이 있나요? 보통 가면 현지인분들이 있으시죠. 그분들의 사연이 궁금해 본 적 있으신가요? 행복한가 에디터가 자주 가는 단골 인도 음식점 사장님을 직접 만나고 왔습니다. 유창한 한국어 실력의 사장님과 즐거운 인터뷰 함께 보시죠~^^ Q. 안녕하세요. 자기소개 부탁드릴게요! 저는 네팔이라는 나라에서, 20년 전에 한국에 왔던 올리 저건나트라고 합니다. 지금 현재 ‘비하니’ 네팔 인도 음식점 인천 부평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반갑습니다. Q. 한국에 어떻게 오게 되었나요? 제가 친구소개로 네팔의 외국어 대학교에서 한국어를 공부하게 되었고요, 그 후에 한국에 와서 2년 동안 경희대학교에서 어학연수를 하게 되었습니다. 공부할 때 제가 여러 비즈니스 하는 사람을 만났어요. 그리고 같이 무역하며 일하다가 한국에 정착하게 되었습니다. 2007년도에 시작했어요.▲2008년 인천신문에 실린 저건나트 이야기 Q. 한국에서 네팔 인도 음식점을 하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요? 제가 네팔에서 무역했거든요. 네팔 물건을 한국에 보내고요. 그리고 한국에 물건도 네팔에 유통해볼까 생각했는데 여러 가지로 어려움이 있었어요. 그리고 당시 네팔의 상황이 좋지 않았어요. 그런 상황에서 제가 아는 한국이라는 나라는 너무 좋았어요. 한국 분들 성실하고 열심히 하고요. 제가 배울 점이 많았어요. 그래서 한국에 가면 어떨까 생각하게 됐고 바로 실행에 옮겨 부평에 정착하게 되었어요. 그리고 바로 네팔 인도 음식점을 차렸죠. 저희 가게를 통해서 네팔의 문화를 한국에 알리고 싶었어요. 네팔 가고 싶은 분들이 저희 가게 오셔서 음식도 드시고, 현지 정보도 많이 물어보시고요. 또 어떤 분은 현지인 음식을 해달라고 하시더라고요. 이런 게 재밌어요. 좋아요. 그리고 네팔을 다녀오신 손님은 대화해보면 그 느낌이 달라요. ▲'비하니'에 장식된 네팔의 에버레스트산과 카트만두 사진 Q. 언제 가족이 가장 그리우셔요? 일 끝나고 집에 가거나, 조금 몸이 안 좋거나, 조금 상처를 받을 때 집을 그리워합니다. 메신저를 통해서 가족과 채팅하고 화상통화를 합니다. 어떻게 보면 가족과 소통하는데 저에게는 ‘약’입니다. 머리 아프거나 할 때 와이프한테 화가 난 이야기하고 조잘조잘 대다 보면 아픈 것이 사라집니다. 어려울 때 심심할 때 혼자 있을 때 무슨 일이 있을 때 식구들을 그리워합니다. Q. 가족에게 고마운 부분은 무엇인가요? 네팔에 있는 가족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요? 가족에게 고마운 점은 정말 많아요. 와이프는 제가 한국에서 번 돈을 관리를 참 잘해줘요. 와이프는 아이들 봐주느라 고생도 참 많고요. 건강하게 자라고 있는 아이들이 공부도 열심히 잘하고 있고요. 여러 가지로 반은 제가 하고 반은 와이프가 잘 하는 것 같아요. Q. 가족으로서 저건나트님은 어떤 사람인가요? 얼마 전에 와이프와 아이들이 한국에 왔었어요. 와이프가 저에게 가끔 하는 말이 있어요. ‘당신은 우리보다 식당을 더 좋아한다!’라고요. 저는 식구들도 물론 좋아요. 근데 와이프랑 싸우고 손님을 안 받으면 안 되잖아요? 와이프도 제 맘을 알 거라고 생각해요. 식구들이 잘 지내면 저도 스트레스 안 받고 즐겁게 일을 할 수 있고요. 그래서 그 부분에 대해서는 저는 가족들에게 잘했고 도움을 주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Q. 네팔에 있는 가족분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요? 네팔에서 와이프와 아들 두 명 총 셋이 살고 있거든요. 저는 떨어져서 한국에서 지내고요. 지금처럼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어요. 저는 와이프나 아이들에게 아무런 불만이 없어요. 다만 그분들이 저에게 불만이 있을 거예요. 하하하. 같이 있지 않아서요. 저는 막내아들이 시험 기간일 때 네팔에 항상 과거든요. 한번 제가 못 갔어요. 근데 그해 시험점수가 많이 떨어졌어요. 제가 네팔 집에 가면 깨워 놓고 공부하도록 옆에 앉아있거든요. 아들이 핸드폰도 못 보게 했어요. 옆에서 잠도 못 자게 가만히 공부할 때까지 기다리고 있어야 해요. 그런 것들이 저도 너무 어렵지만, 또 너무 그립습니다. 우리나라가 조금 가난해서 우리가 같이 있는 행복이냐, 돈을 버는 행복이냐 이런 이야기를 많이 하거든요. 저는 지금 돈을 버는 것을 선택했어요. 왜냐면 제 아들들이 다음에 외국이 안 가고 네팔에서 잘 살 수 있게끔 하고 싶어요. 제가 행복을 위해 열심히 일하며 돈을 버는 선택을 했어요. 솔직히 식구들이 조금 어려워도 같이 사는 것은 아주 행복한 것 같아요. 행복은 돈이 없어도 어려워도 그 순간순간에 행복할 수 있어요. 돈이 있어도 부자도 행복함이 없는 사람이 있어요. 반드시 행복을 찾아야 하고, 찾을 수 있어요. Q. 저건나트님에게 가장 큰 '행복'이란 무엇인가요? 행복에 관한 생각은 일주일 마다 바뀌는 것 같아요. 하하하. 제일 좋은 것은 어려운 상황에서도 행복을 찾는 것이에요. 저는 식구랑 떨어져 살지만, 조금 돈이 없더라도 식구랑 다 모여 사는 것만큼 행복한 것은 없다고 생각해요. 근데 아픈데 돈이 없다는 상황을 가정해보면 또 어떡하지? 싶거든요. 돈도 어느 정도 있어야 어려운 사람들과도 나눌 수 있을 것 같아요. 욕심 없이 식구와 같이 쓸 수 있으면 아주 많이 행복하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지금은 일 년에 한 번씩 네팔에 가고, 두세 달 정도 있다가 와요. 그 함께하는 시간이 정말 금방 갑니다. ▲저건나트 님의 가족사진 (가족 모임 때) Q. 사장님 혹시 한국에서 한가한 시간에 취미생활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좋아하는 한국음식은요? 저는 지금 나이도 먹고 힘들기도 해요. 그래서 집에서 주로 쉬는데 요즘에는 소셜미디어를 많이 해요. 한국 음식 다 먹어요. 제 입맛에 잘 맞고 가리는 것 없이 다 좋아해요. 저는 손님이 제 친구예요. 한가한 시간에 친구 만나고 그런 게 아니고요. 그래서 저는 가게에 가는 게 즐거워요. 또 손님들한테 힘을 많이 얻어요. 제가 어려운 일이 있으면 손님한테도 이야기해요. 좀 친해진 손님들한테요. 저는 ‘형’들이 많아요. 제 개인적인 이야기도 하고 그런 게 있는데 참 재밌어요. 어떤 사람은 어려우면 저한테 와요. 저한테 이야기하고 나면 다 풀린데요. 하하하. Q. 마지막으로 가족생활중심 사단법인 행복한가 가족여러분들께 한말씀 부탁드립니다. 돈이 있거나 없거나 행복은 얻을 수 있어요. 자기가 가진 것 조금이라도 나눌 수 있어요. 돈이 많은 사람들이 기부하는 것도 좋지만요, 돈이 없는 사람이 조금이라도 돈을 기부하는 것은 심적으로 큰일이라고 생각하고요. 사람이 살 수 있는 부분은 행복밖에 없어요. 어려운 상황에서도 행복을 잡을 수 있으니 그것을 찾으려고 노력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저희 아버지가 이런 말씀을 매일 하셨어요. 너희 남매가 매일 치고 받고 싸워도, 아빠가 잔소리 한다고 싫다고 해도 언젠간 이 순간이 사무치게 그리워질 거라고요. 그때가서 질질짜며 울지말고 지금 잘하라고요!^^~ 저건나트 사장님 말씀처럼 가족과 함께 할 수 있는 것이 제일 행복하다는 것 잊지 않아야겠습니다. 이상 행복한가 에디터♥ 였습니다. 네팔 인도음식점 ‘비하니’는 인천 부평역 인근에 위치합니다. ● 비하니/ 매일 11:30 - 23:00 연중무휴 위치 : 인천 부평구 광장로24번길 13 신성빌딩 http://naver.me/GiUM7Dzf♥ 행복한가의 모든 콘텐츠는 여러분의 소중한 지지와 후원으로 만들어집니다 ♥
청소일 하는 엄마, 경비원 하는 아빠 이야기를 전하는 공미선 작가
안녕하세요, 행복한가 에디터♥ 입니다. 이번 2021년 1월 둘째 주 화제의 인물은 부모님의 이야기를 자신만의 작품으로 전하는 공미선 작가 입니다! 우연히 친구따라 관람하게 된 전시회 ‘불효자는 웁니다’ 몇 년이 지난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 가슴 한켠에 콕 박힌 그 이야기를 소개해드리려 합니다. 아파트에서 청소하는 엄마, 경비하는 아빠와 함께 돈벌어 오는 것 없는 반백수 예술가 공미선 작가의 이야기 함께 보시죠. Q. 공미선 작가님 안녕하세요.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언제나 저 자신을 소개하는 일은 너무 어려운 일이지만 제가 누구인지 한번 생각해보면… 저는 미술을 전공해서 졸업 후 10년간 미술 작가로 살아왔어요. 그렇다고 미술 작가로 유명해지거나 돈을 벌진 못해서, 초등학교에서 방과후 학교 미술강사로 일을 병행했어요. 또 얼마 전에는 유튜버가 되겠다고 2년 가까이 고전을 했는데 잘 안돼서 그만뒀고, 지금은 뜬금없이 웹툰 작가가 되겠다고 준비 중이에요. 이렇게 저는 딱 한 가지로 정의 내려 소개하긴 어렵지만, 한편으론 여러 가지 정체성으로 변모하며 사는 창작자? 정도라고 소개할 수 있겠네요. Q. 주로 어떤 작업을 하셨는지 궁금합니다!^^ 또한 전시회 ‘불효자는 웁니다’ 에 대한 소개도 부탁드립니다. 저는 앞서 말했듯이 대학에서 미술을 전공했어요. 하지만 작업실에 가만히 앉아서 혼자 그림을 그리는 일보다는 작업실 밖에 나와서 사람들을 만나고 어울리는 일에 더 관심이 많았어요. 그러다 보니 다양한 사람들과 함께 예술을 즐기고 작품도 만드는 공동체 예술이란 분야를 알게 되었고, 몇 년 동안 그런 활동들을 해왔어요. 그렇게 전국 방방곡곡을 돌며 사람들을 만나서 함께 예술이란 것을 했는데 정작 저와 가장 가까운 제 가족은 제가 어떤 일을 하고 다니는지 잘 모르실뿐더러 저한테 그런 것 좀 관두고 취직이나 하라고 하셨죠. 착한 공미선 이제 그만할래요, 공씨 심부름센터, 인생은 달고나 등 다양한 작업을 진행했어요. 그래서 저는 내가 하는 예술이란 것을 우리 엄마·아빠와 해보자 하는 생각을 일명 “불효자는 웁니다” 프로젝트를 시작했어요. 그 후 엄마 아빠와 이상한 옷을 만들어서 입고 퍼포먼스도 하고, 엄마·아빠의 결혼 이야기를 인터뷰해서 애니메이션도 만들고, 엄마·아빠와 함께 시를 짓고 그림을 그려 시화도 만들어봤어요. 그렇게 엄마·아빠와 엉뚱한 짓거리들을 하다 보니 3년이란 시간이 홀딱 지났어요. 처음에는 엄마·아빠와 예술을 해보며 내 생각과 삶을 설득시키려고 했는데 끝에 가서는 제가 엄마·아빠의 생각과 삶을 더 많이 이해하게 되었어요. ●‘불효자는 웁니다’ 전시회 관련 자료 바로가기 ●부모님의 결혼스토리로 구성한 ‘우연히 관식이를‘ 애니메이션 바로가기 Q. 엄마·아빠와 함께 작업을 한다니 정말 의미 있네요! 사진들도 너무 인상 깊고요. 네, 저는 그렇게 3년이란 시간을 보내고, 그 결실인 작품들을 전시로 소개하는 과정만 남겨뒀었는데 전시 또한 녹록지 않았어요. 저는 정말 즐겁고 소중하게 작품들을 만들었는데 정작 남들에게는 그렇게 느껴지지 않았는지 우리의 작품을 받아주는 갤러리들이 없었어요. 그래서 저는 결국 제가 사는 9평의 자취방을 비우고 전시를 열었어요. 부모님은 제대로 된 전시장도 아니고 그런 곳에서 무슨 전시하느냐고 추잡스럽다며 와보시지도 않으셨어요. ▲공미선 作 ‘불효자는 웁니다’ 전시장 사진 그리고 여전히 예술은 때려치우고 취직을 하든지 시집을 가라고 늘 잔소리를 하시죠. 하지만 그 전시를 마친 뒤 언젠가 저한테 길가에 만들어진 조형물을 보면 제가 떠오르셨다는 말씀을 하셨어요. ‘아 미대 나와서 부모 속 썩이는 자식이 여기 또 하나 있구나’ 싶으셨데요. 그냥 지나치듯 하신 말인데 저는 그 말이 너무 좋았어요. ‘함께 예술이란 것을 하며 서로를 알아갔던 그 3년이란 시간이 완전 허탕은 아니었구나.’ 엄마는 ’미술 작가로서의 나를 기억해주고 있구나.’ 라는 생각이 들어서요. ▲공미선 作 ‘불효자는 웁니다’ 전시 사진 中 Q. 그렇게 서로를 이해할 수 있게 된 것만으로도 큰 성과라고 생각됩니다:) 작가님 요즘에는 어떤 작업을 하고 계신가요? 지금은 ‘청·경·반’이라는 제목의 만화를 그리고 있어요. ‘청소아줌마, 경비아저씨, 반백수’ 라는 말의 줄임말인데, 말 그대로 청소를 하는 엄마, 경비를 하는 아빠, 반백수인 제 이야기예요. Q. 와우~! ‘불효자는 웁니다’의 연장선인 느낌인걸요? 만화를 그리게 된 동기가 있다면요? 네, 제가 대학을 막 졸업하고 나서 한 뉴스로 세상이 시끄러웠을 때였어요. 제가 다닌 대학의 청소노동자들이 대학을 상대로 노동 환경 개선을 위해 장기 투쟁을 하고 있단 소식이었어요. 그때 저는 졸업 후 어떻게든 먹고 살아보려는 와중이라 그 일에 별 관심이 없었는데 아는 사람 누군가가 제게 그 문제를 따져왔어요. 출신 학교 동문으로서 어떤 입장인지 어떤 노력을 할 건지 뭐 그런 얘기였는데 그때 저는 재수 없단 생각에 별 대꾸 없이 무시하고 지나쳤던 것 같아요. 그리고 한참의 시간이 흐른 후 저는 고향에 내려가 부모님 댁에 머물다가 귀가 쫑긋하는 얘기들을 듣게 됐어요. 예를 들면 엄마가 일하는 아파트에선 바쁜 출근 시간대엔 청소 아줌마들은 엘리베이터를 못 타게 한다. 라든가 아빠가 일하는 경비실은 한밤중에도 형광등을 켜두고 잠을 자게 한다든가 하는 얘기들이었어요. 저는 그런 얘기를 듣는 순간 아주 오래전의 청소노동자 사건이 떠올랐고, 뉴스에서 이따금 들리는 소식들이 그냥 남의 얘기가 아닌 우리 엄마·아빠의 얘기구나 라는 것을 깨달았어요. 그리고 우리 엄마 아빠, 또 저의 일터에서 벌어지는 웃을 수도 울 수도 없는 이야기들을 사람들에게 들려주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그 얘기를 만화로 1년 정도 그리는 중이에요. 어느 정도 분량이 나오면 포털사이트나 SNS 같은 플랫폼에 올려 볼 계획이에요 Q. 너무 기대되는 만화예요! 살짝 몇 컷 보여주실 수 있나요? 계속하는 원동력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네, 스케치 초안본인데 지금은 디지털화시키는 작업을 하고 있어요. 나중에 나오게 되면 알려드릴게요^^~! 저는 전시를 앞두고 있거나 작품 마감 기간이 정해져 있는 것도 아닌데 어떤 동기로 계속 작품활동을 하느냐는 질문을 종종 받아요. 그럼 그냥 ‘좋아하는 일이니까.’라고 대답하고 마는데 또 한편으로는 원래 성격이 성실한 편이기도 해요. 여기 행복한가에서 인터뷰를 하는 거라서 하는 말이 아니라 이 성실함은 우리 부모님께 물려받은 유산이라고 생각해요.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보고 자라며 배운 게 엄마·아빠가 악착같이 열심히 사는 모습이어서 저도 그게 몸에 밴 것 같아요. 그래서 내가 큰 재능도 없고, 똑똑하지 않으니 열심히라도 해야지 하는 생각으로 작품활동을 하고 있어요. ▲공미선 作 만화 ‘청·경·반’ 초안 스케치 Q. 가족으로서 공미선 작가님은 어떤 사람인가요? 저는 술래놀이로 치자면 해바라기, 홀아비, 깍두기 그런 존재예요. 엄마·아빠는 제게 언제나 안정적이고 평범한 삶을 원하셨고, 학창 시절에는 어느 정도 그 뜻에 맞춰 살아왔어요. 그런데 졸업하고 제가 예술 한답시고 제멋대로 살고 있으니 저는 가족에서 늘 골칫덩이인 거죠. 당신들이 배우지 못하고 없이 살았으니 내 자식은 좀 잘 살았으면 하는 부모님의 마음은 이해하지만 그렇다고 제가 그 바람에 타협해서 살 수는 없으니 죄송한 마음이 커요. 하지만 저는 계속 가족의 해바라기, 홀아비, 깍두기 같은 존재로 남아 저 나름대로 살면서 부모님께 세상엔 이런 삶도 있다고, 이렇게 살아도 행복할 수 있다고 보여드리고 싶어요. Q. 작가님에게 가장 큰 '행복'이란 무엇인가요? 저는 세상 사람들의 인정보다 저 자신의 만족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며 살고 싶어요. 대부분 사람이 보편적으로 바라는 삶의 기준과 목표가 있잖아요. 저 또한 그런 것을 갖지 못해 슬프고 힘들 때가 있는데 그럴 때면 제 모습을 객관적으로 보고 점점 그 욕심을 내려놓으려고 부단히 노력해요. 그리고 지금 내가 가진 행복들, 예를 들면 반려견, 친구들, 산책, 차 한잔 마시는 일 이런 것들에 호들갑 떨면서 최대한 행복을 느끼려고 해요. Q. 부모님께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요? 이제 두 분 다 연세도 있으시고 건강도 안 좋아지셔서 퇴직이 몇 년 남지 않으셨어요. 평생 성실이 미덕이라 생각하고 일만하고 사신 분들이라 정작 일을 관두고 나시면 어떤 생각이 드실까 궁금해요. 약간 무력하고 우울해지는 건 아닐까 걱정도 되고요. 하지만 노동과 자식 걱정은 두 번째로 미루고 당신들의 삶을 쁠뤡스~하면서 사시라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그 쁠뤡스의 첫 시작으로 내년 여름엔 제주도로 다 같이 가족여행 가자고 제안해 보려고요. ▲공미선 作 ‘착한 공미선 이제 그만할래요’사진 中 Q. 앞으로 작가님의 꿈은 무엇인가요? 즐겁고 신나게 사는 거요. 칠십이 되고 팔십이 되어도 철없는 할머니가 돼서 내가 하고 싶은 것들을 하면서 즐겁고 신나게 살고 싶어요. 그때까지 하고 싶은 것들이 너무너무 많을 것 같거든요.▲공미선 作 ‘착한 공미선 이제 그만할래요’사진 中 Q. 마지막으로 가족생활중심 행복한가 구독자분들께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저같이 평범하고 별거 없는 사람이 이런 말씀을 전해도 되는지 의구심이 들고 송구하지만, 끝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해요. 2020년이 코로나로 심심하고 우울한 한 해가 되셨을 수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자신에게 집중하고 찐 행복이 무언지 곰곰이 생각해볼 시간이 되셨을 거라 믿어요. 2021 신년에도 세상이 바라는 행복이 아닌 우리 각자의 찐 행복을 향해 달려가는 삶이 되시길 바래봅니다. 야호 ~~~~~~~~~~ : ) 마지막으로 ‘불효자는 웁니다’에 전시되었던 공미선 작가의 부모님과 함께 작업한 시 한편 함께 나누며 인터뷰를 마치겠습니다. 엄마가 되는 집 엄마가 되는 집 좁지만 춥지 않고 조용하지만 외롭지 않은 집 마당엔 개도 한 마리 있어서 딱 알맞은 집. 우리 둘이 살기에 그 집에서 새끼를 낳는다. 누가 애비인지는 중요치 않다. 다만 내가 엄마다 새끼의 엄마는 나다 이제막 엄마가 된 여자는 악쓰던 입으로 뭐라도 씹어 삼킨다 악착같이 씹다가 제볼까지 씹어삼킨다. 이어 또 한술 뜨려니 뜨끈한 것이 울어재낀다 울지마라 울지마라 너는 절대로 서러운것이 되면 안되니까 나도 남들처럼 살 수 있다고 새끼를 안아 볼 수 있는 복이 있다고 믿고싶으니까 지은이-공미선, 글쓴이-공관식, 그림-박우연 공미선 작가의 더 많은 이야기가 궁금하시다면 아래의 링크를 참고해주세요^^ ●공미선 작가 블로그 ●유튜브 무료한 도전 이상 행복한가 에디터♥ 였습니다. ♥ 행복한가의 모든 콘텐츠는 여러분의 소중한 지지와 후원으로 만들어집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