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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주걱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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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내 가슴, 안녕하니? ‘유방랜드’ 임정서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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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행복한가 에디터가 밥주걱을 들고 전국 어디든지 찾아간다!♥


    행복한가 밥주걱 인터뷰 제 2호는 ‘유방랜드’ 임정서 작가입니다.

    혹시 그 유방이 우리가 아는 그것 맞냐구요? 네 맞습니다! 왠지 민망한 듯 감추고 싶은 단어 ‘유방’에게 임정서 작가가 묻습니다. ‘하 와 유 방? 하 우 두 유 두? 내 가슴, 안녕하니?’ 왠지 모르게 우리의 시선이 머무는 단어 ‘유방랜드’ 그 깊은 이야기 속으로 함께 가보시죠!

    Q. 안녕하세요! 행복한가 밥주걱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너무나도 감사드립니다. 소개 부탁드리겠습니다.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임정서 작가입니다. 저는 2013년부터 창작 활동, 예술 활동을 하고 있어요. 영화 제작을 시작으로까지 좀 더 다양한 형태의 예술적 탐구를 하고 있고요, 하나의 어떤 정형화된 분야에 갇히는 것보다는 ‘어떤 것이 예술일까?’라고 하는 부분에 좀 더 호기심을 가지고 탐구하면서 지내고 있는 것 같아요.

    Q. 주로 어떤 활동을 하시는지 궁금합니다.

    지금까지 다양한 형태의 활동을 하고 있어요. 실험영화의 개념에서 영상이 전시장에서 보여지는 작업, 퍼포먼스가 이어져 공연되는 것을 만들기도 하고요. 또 예술 기획 활동도 하고 있어요. 저의 전공이 시각디자인과 일러스트인데, 디자인이라는 게 결국 커뮤니케이션이니까 그런 맥락에서 이어지는 여러 가지 것들을 엮어서 하고 있어요.

    Q. ‘유방랜드’는 무엇인지 소개 부탁드립니다.

    네, 유방랜드는 유방암뿐만 아니라, 병과 죽음으로 인한 상실, 그리고 억압하는 사회에 대한 우울을 예술로 호방하게 대처하는 자세를 탐구하는 작업이에요. 건강한 몸과 마음, 사회를 일구기 위해 '가슴 친구'를 모아 연대하며, 함께 예술 운동을 하고 있습니다.


    # 유방랜드의 배경

    유방랜드를 시작하게 된 스토리가 있는데요, 제가 초등학교 2학년 때 어머니가 유방암 진단을 받으셨어요. 그렇게 계속 치료를 받으시다가 수술도 하셨거든요. 늦게 말기에 발견됐던 것 같아요. 그러다가 제가 5학년 때 다시 재발하고 그때 어머니가 돌아가셨어요. 그 후 저 스스로 한국에서의 삶이 너무 힘든 거예요. 그런 것 때문에 아버지가 뉴질랜드로 유학을 제안을 해주셨어요. 그곳에 이모가 살고 계시기도 하고요. 그렇게 중2 때 유학을 하게 됐고, 환경적인 환기가 많이 되기도 했으나 그 세월에 저의 마음은 돌아보지 않고 그냥 씩씩한 척 괜찮은 척 지냈었나 봐요. 20대 초반이 되어 우울감 같은 것이 한꺼번에 초반에 몰려오면서 상당히 힘들었거든요. 그런 시기를 겪고 나니까 이게 그냥 예술작업이 아니라, 이게 ‘한’인가? 이걸 그대로 안고 가면 계속 내 발에 걸려 넘어질 것 같았어요. 그래서 한번 풀고 지나가지 않으면 나에게 미래가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유방랜드의 가슴친구 17번

    # 엄마를 보낸 슬픔을 극복하자

    그래서 예술은 나의 표현 방식이니까 나의 슬픔을 들고 예술로 넘어가 볼까 해서 시작하게 된 거예요. 어떻게 보면 작업이라는 것이 그 주제를 오랜 시간 고민하고 묵상하는 거잖아요. 그런데 되게 저에게는 엄마를 떠나보낸 유방암이라는 병, 그 사건이 슬픔이었던 거죠. 그 슬픔이 그냥 함몰되더라고요. 작업으로 극복할 수 있을 거로 생각했거든요. 그럼 내가 이 문제를 가지고 어떻게 살 수 있지? 고민했어요. 이제 죽을 수는 없잖아요. 살아있어야 하니까요.

    # 극복의 결정체 ‘유방랜드’

    그렇게 생각하다 보니까 극복의 방법이나 어떤 해소의 방법 같은 과정론 같은 심리학 책을 자주 보게 되더라고요. 내가 도달해야 하는 지점에다가 놓고 어떻게 할 수 있을까 상황을 구상해보고, 다음에 대입시키는 거죠. 그래서 각각의 심리상태를 담아서 퍼포먼스로 공연작업을 했어요. 영화를 만든다고 생각했고, 관객이 이렇게 그 공간에 와서 보면서 그 과정을 거치고 이해해서 극복된 마음으로 나아가는 사람이라는 것을 생각하였고, 그 안에 어떤 주제가 유방암과 그런 걸 마주하는 그런 마음들을 설정해서 만들어보게 됐어요.

    ● 유방랜드 티져영상





    # 유방랜드를 통해 깨달은 것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아프지 않고 건강하게 잘 지내는 것이 중요한 문제라는 것을 깨달았어요. 특히나 엄마가 병으로 무너졌을 때 받은 삶의 영향이 너무 컸기 때문에, 가정이라는 작은 사회 구성원이 흔들리는 것이 속상하고 아픈 일이라는 것을 알았고요. 그러지 않기 위해서는 일단 모두 건강해야 한다는 생각이 강해졌어요. 그래서 유방암 검진하는 동작을 안무가를 섭외해서 같이 따라 하기 쉽게 만들어 영상으로 제작했어요.

    ● 유방랜드 검진법 영상 ‘하 와 유방? 하우 두 유 두?’



    Q. 유방암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한가지 측면이 아닌 다양하게 표현하신 거네요. 유방랜드를 통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무엇이었나요?

    네, 그 후에 지속적인 활동을 하기 위해 유방랜드를 단체로 등록했어요. 건강이라는 것은 살아있는 한 계속 지키면서 가야 하는 거잖아요. 그것을 스스로 까먹고 있을 때 잃게 된다고 생각했어요. 10월이 유방암 캠페인 달이에요. 매년 지속해서 알려지는 이유가 뭘까 생각해보니, 인간이 계속 까먹기 때문인 것 같아요. 유방랜드를 통해 자체적인 유방암 캠페인을 어떤 형태로든 계속하겠다고 생각했어요. 2020년도에 유방랜드 시즌 2라고 해서 ‘가슴 친구’라는 제목으로 지금도 계속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한강의 유방방유 해프닝

    Q. 유방랜드 같은 단체들이 또 있나요?

    네, 유방암 관련한 단체들은 있어요. 유방랜드는 저의 개인사와 연결된 추상적인 것에 더 가까운 단체인 것 같아요. 첫 회 때는 자금이 나올 곳이 없어서 유방 관련된 재단에 메일을 보내 협력 요청을 했었어요. 근데 너무 어렵더라고요. 대기업 A사는 유방건강재단이 사회공헌사업 파트로 설립이 되어있어요. 제가 연락을 정말 많이 하여서 팀장님이 한번 만나주셨거든요. 결국 저와 함께하지는 못했었지만, 저에게 소정의 협찬품 같은 걸 보내주셨어요. 아무래도 대기업에서는 대중적인 가치관으로써의 보수성을 깨지 못했던 것 같아요.
    예술이라는 게 계획만으로 다 전달되지 않는 많잖아요. 나중에 ‘유방랜드’ 홍보물을 전해드리면서 소식을 전해드렸는데 이걸 이렇게 풀어낼 줄 몰랐다고 하시더라고요. ‘유방랜드’라고 유방을 대놓고 하지만 전혀 선정적이지도 않았거든요.



    ▲전시와 공연이 결합된 유방체험공간에서 유방랜드 안무 파트 

    https://www.facebook.com/YouBangLand/videos/567587406934878/


    그래서 그때 깨달았어요. 이 주제를 유방암 인식개선 하려고 하는 부분도 제 개인적으로는 있지만 그런 접점이 사회 공헌 적으로 하는 것과 다르게, 내가 예술가로써 짚을 수 있는 유방들을 대놓고 활동하는 것 자체가 큰 의미가 있는 것 같더라고요. 제가 하는 모든 것들이 유방이거든요. 유방 무덤, 유방 탑, 유방 섬 등이요. 만두도 유방으로 보여서, 만두와 유방을 합치는 그런 작업을 해보려고 해요.



    ▲ 유방랜드의 프로젝트

    Q. 어머님이 돌아가시기 전에 어떤 시간을 보내셨나요? 기억나시는 부분 있으신가요?

    네, 그때 제가 어려서 잘 기억은 안 나지만 엄마는 떠날 것을 아시고는 서서히 정리를 하셨다고 해요. 본인의 배우자는 새로운 인생을 살아야 한다는 생각으로, 자식들을 뉴질랜드에 사는 언니에게 맡기는 입양 절차 같은 것도 알아보시고, 저희랑 같이 뉴질랜드에 가기도 했고요. 여러모로 조사해보셨다고 해요. 하지만 아버지 또한 당사자시니까, 아버지는 그러고 싶지 않다고 하셨어요. 생각해보면 이런 게 복된 것이 아닐까 생각이 들어요. 엄마가 돌아가시고 몇 년 후인 중학교 2학년 때 저를 이모가 살고 있는 뉴질랜드로 유학을 보내셨어요. 아무래도 예민한 시기인 만큼 환경적인 환기가 필요했다고 생각하셨던 것 같아요.

    Q. 정서님에게 엄마는 어떤 존재였는지요?

    엄마는 일반적으로 ‘엄마’라는 단어가 가지는 이상향적인 것과는 달랐어요. 엄마는 저에게 친구 같고, 독립적이고, 자기 주장이 강한 사람이었어요. 일도 계속하시고요. 아버지와 같이 약사셨거든요. 바쁘신 와중에도 항상 챙겨주셨어요. 챙겨줌의 의미가 뭘 해서 주는 게 아니라 직접 할 수 있도록 하는 법을 알려주시곤 했어요.
    집안일은 분담해서 했었는데, 어떤 규칙을 만들어서 가사노동을 저희에게 하청을 주시는 거예요. 저희도 용돈을 쓰려면 집안일을 해서 돈을 벌어야 했어요. 설거지는 500원이었고요. 그니까 오빠랑 저는 그 일을 따야 해요. 경쟁적으로 하는 그것들이 게임 같고 재밌었어요. 그러면서 당연히 장부를 쓰게 됐고요.

    Q. 어머니의 그런 교육법으로 정서님이 더 뉴질랜드에서 독립적으로 살아갈 수 있게 된 것이군요.

    네, 맞아요. 생각해보면 부모님 맞벌이셨기 때문에 그런 상황을 일찍부터 직면했던 것 같아요. 저는 초등학교 2학년 때, 엄마가 아프기 전부터 요리를 했어요. 요리하는 것을 되게 좋아했어요. 돈가스를 만들고 싶으면 엄마한테 전화해서 물어봐요. 엄마가 알려주시는 대로 직접 재료도 사 오고 뚝딱뚝딱 만들었어요. 저녁을 차려놓고 가족들이 맛있게 먹으면 기분 좋아했던 그런 어린이였어요. 예를 들면 고기를 사는 가게가 집에서 좀 멀었는데 어떻게 가는지 모르지만 버스를 타고 가면 된다는 것을 알았어요. 그 부분에 대해서도 저희 엄마는 과잉보호 없이 어디 가서 몇 번 버스 타면 된다고 말해주셨어요. 제가 직접 할 수 있게끔 이끌어 주신 것 같아요.



    ▲ 초등학교 3학년때 이모와 함께

    Q. 어머님이 ‘유방랜드’를 보셨다면 어떤 반응이셨을까요?

    그게 약간 가늠이 잘 안 되는데요, 엄마가 돌아가시고 나서는 그런 생각을 많이 했어요. 오히려 더 씩씩하게 우리 엄마가 살지 못한 내일을 더 행복하게 살 거라고요. 그런 인식을 제가 갖고 있게끔 엄마라는 사람이 그런 태도로 삶을 살았겠죠? 그래서 엄마도 저를 보시고 되게 뿌듯해하실 것 같아요. 근데 너무 슬프고 속상하게 다루는 이야기를 하면 오히려 저에게 오셔서 ‘정서야, 너 그렇게 슬퍼할 필요 없어. 넌 너의 것이 있고, 너의 삶이 있고 행복하게 잘 살면 돼’라고 말씀해 주실 것 같아요. 또 장난처럼 오셔서 ‘만두를 유방처럼 만들어봐’,‘저 가마솥이 유방 같지 않니?’라고 하실 것 같고요. 하하하.

    Q. 어머님이 해주신 음식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무엇인가요?

    아, 참 이럴 때 낭만적인 추억을 말해야 하는데 또 그렇지 않아요. 하하하.어렸을 때 겨울에 엄마가 김치찌개를 만들어주셨는데요, 찌개를 먹고 있는데 엄마가 갑자기 ‘거기 내 살 들어가 있어.’ 이러시는 거예요. 순간 ‘엥??’ 하고 엄마를 쳐다봤는데 엄마가 손을 보여주시면서 ‘응, 김치 자르다가 내 손 살점이 조금 잘려서 같이 들어가 버렸어.’ 이러시는 거예요. 너무 어이가 없고 웃겼어요. 그게 가장 기억에 남아요. 엄마의 살점이 들어간 김치찌개예요. 물론 맛있었지만, 충격적인 맛도 같이 났어요. 하하하.

    Q. 가족과 함께 먹은 최고의 밥상은?

    밥상 메뉴 같은 것보다는, 엄마와의 마지막 날 식사가 기억에 남아요. 엄마의 마지막 날이 오빠랑 저 학교 가기 전, 그리고 오빠는 수학여행 가는 당일 오전이었어요. 엄마가 그 시기는 많이 아파서 잠을 못 잤어요. 그래서 주로 마루에 앉아 계셨는데, 아침에 분주하게 오빠랑 시리얼을 먹으려고 하는데 유통기한이 지난 거예요. 그래서 안 먹는다고 투덜거리고, 아빠랑 투닥투닥 싸웠던 것 같아요. 그 모습을 엄마가 보시고 ‘그거 내가 먹을게’ 이러시는 거예요. 또 강아지가 강아지 과자를 안 먹으면 그걸 엄마가 들고 계시고요. 완전 쿨하게요. 세월이 지나고 오빠랑 이야기했어요. 그 시기에 우리가 왜 투닥거렸을까, 그게 뭐가 대수라고. 그런 것들 때문에 기억나는 밥상이었어요. 그리고 그날 엄마가 돌아가셨어요. 그 시리얼에 대한 기억을 몰래 훔쳐본 오빠 일기장에서도 발견했고요. 살면서 죽음이란 걸 생각하면 별것 아닌 것들이 많이 있는 것 같아요.


    ▲임정서 작가 8살 때 가족과 함께 공원에서

    Q. 가족으로서 정서님은 어떤 사람인가요?

    저는 아빠한테도 ‘나 같은 딸 있어서 아빠는 너무 복 받았다~~’, 오빠한테도 ‘나 같은 동생 있어서 너무 좋지?’ 이런 이야기를 많이 하는 편이에요. 제가 가족에게 잘해줘서도 그렇게 말할 수 있는 것 같지만 그보다도 더 표현하고 더 나누고 그래야 더 풍성하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그렇지 않아도 그렇게 표현해보는 것 같아요. 가족으로써 저는 철없는 딸 같아요. 정신적 교감을 빼고는 생계 같은 경우는 예술을 선택했고, 제가 하고 싶은 것을 하고 살기 때문에 역할적인 구성원으로서는 항상 기대고 신세 지고 철없는 그런 상태죠. 하하하.
    제 이상은 부모님 용돈 드리는 자녀가 되는 것인데, 지금은 생활하는 정도의 비용 정도는 프리랜서 활동을 통해 충당하고 있어요.

    Q. 가장 큰 '행복'이란 무엇인가요?

    그냥 가만히 있어도 자연스럽게 내가 미소가 지어지고, 아침에 일어나서 너무 행복해서 웃음을 머금고 지내는 상태요. 너무 편안하고 부대끼는 데 없고 걸리적거리는 것 없이 너무 상쾌하게 일어나서, 상쾌하게 아침을 맞고 내 주변에 흐르는 환경들을 보고 왜곡되지 않게 생각할 수 있는 마음가짐의 상태요. 내가 너무 힘들 때는 새소리도 예쁘게 들리지 않고 ‘저 새는 왜 저러지?’ 이렇게 되잖아요. 그렇지 않은 상태, 그게 행복 같아요.


    ▲임정서 작가 3살 때 엄마와 함께

    Q. 하늘에 계신 어머님께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요?

    같이 오래 더 있었더라면, 지구에서의 삶을 더 같이 살 수 있었더라면 엄마랑 하고 싶은 게 많았을 것 같아요. 어릴 때와는 다른 매해 나이 때마다 느끼고 보고 하는 것들이 많은데, 그런 것들을 엄마에게 주절주절 늘어놓고 싶어요. 근데 엄마가 없어서 아쉽다는 생각이 들어요. 근데 되게 고맙기도 한 것이 뒤돌아 생각해보면 친구 같은 엄마였고, 대화가 매우 많았고 항상 물어봐 주시고요, 제 감정을 늘 확인해주는 엄마였어요. 학원에 가기 싫다고 하면 그 이유가 모자란 생각이어도 강요하지 않고 제 결정을 존중해주셨어요. 제가 어떤 친구를 미워하는 마음이 들어서 힘든 거예요. 그걸 고민했더니 당연히 네가 그럴 수 있고, 달라서 그런거고 싫어하는 마음에 대해서 스스로 못 마땅해할 필요 없다고 알려주시는 엄마였어요. 그런 소통의 지점이 없는 가정들이 많더라고요. 저는 아빠와도 편한 대화를 많이 하거든요. 그런 교류를 할 수 있는 사람이 있었다는 게 인생에서 참 큰 복이고 감사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너무 좋은 사람이라 내 인생에 짧게 있다가 가셨나? 하는 생각도 들어요. 

     

    Q. 앞으로 작가님의 꿈은 무엇인지?

    지금 하고 싶은 일, 해보고 싶은 것들의 가능성에서 저를 열어두고 시도해보는 삶을 사는 것이에요. 힘듦 없이 할 수 있게 하는 것이에요. 인생을 여행하면서 살다가 갈 수 있는 것이요. 온갖 것들을 해보면서 살아가고 싶어요. 그냥 저는 재밌으면 하거든요. 어떤 필터가 있긴 한데 그게 제 목적성에 맞으면 누가 뭐라고 하든 말든 그냥 해요. 하하하.
    그리고 꿈이라는 게 현실적인 것도 있고 이상적인 것이 있잖아요. 안정성을 만들어야 하는데 안정성이라는 게 아마 그 고정된 무언가 이고요. 하지만 야생마같이 들판에 뛰어다녀야 하는게 저의 성향인데, 이것을 맞춰가는 것이 어려운 것 같습니다.


    ▲ 유방랜드 카세트테이프에 실린 글 中

    Q. 마지막으로 가족생활중심 ‘행복한가’ 구독자분들께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저는 이런 가정에서 이런 경험을 했다는 것, 단단한 내실을 다지게 해준 것 들을 나누는 것이 숨길 것 없이 당연한 것이고, 너무 좋아요. 하지만 주변에 가까운 친구들이랑 이야기하면서 그들의 가정에 대한 어려움, 가족 관계에 대한 힘듦, 그리고 선택해서 타고난 것이 아니라 주어진 것들에 대한 어려움, 원망 같은 것을 들었을 때 내가 너무 나를 이렇다고 말하는 것이 자랑처럼 비춰질 수 있다는 것에 미안한 마음이 들었어요.

    오히려 그래서 다른 사회 차원에서의 가정 문제 같은 것에 더 신경을 쓰고 생각해보게 되고요. 그런 것을 함께 바꿔 나갈 수 있는 문화나 흐름이 형성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을 많이 했어요. 행복한가도 그런 취지를 갖고 계신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행복한가 언제나 응원하겠습니다. 오늘 인터뷰 즐거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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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상 행복한가 에디터♥ 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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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정서 #작가 #유방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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