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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어머니가 내려주신 그루브, '미니데이트' 윤영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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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행복한가 에디터가 밥주걱을 들고 전국 어디든지 찾아간다!♥


    행복한가 밥주걱 인터뷰 제 1호, 그 대망의 첫번째 주자는 최근 JTBC 오디션 프로그램 '싱어게인'에서 '여자 양준일'씨로 화제가 된가수 50호! 윤영아 님 입니다!


    지금까지 살면서 자신이 가진 것을 세어본 적이 있나요?요즘 미니멀리즘으로 필요한 최소한의 물건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을 본 적이 있는데요, 그렇게 손에 잡히지 않는 그것(?)! 여러분이 어머니 배 속에 있을 때부터 뼈속 깊숙히 받은 그것이 무엇인지 하나씩 세어보았으면 하는 바람입니다.가수 윤영아 씨가 어머니께 받은 그것이 무엇인지 밥주걱 인터뷰 이야기 함께 보시죠~!

    Q. 안녕하세요! 행복한가 밥주걱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너무나도 감사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저도 너무 반갑습니다^^ 저는 ‘미니데이트’를 부른 가수 윤영아입니다. JTBC ‘싱어게인’ 방송을 통해 가수 50호로 오랜만에 여러분을 만나고 이렇게 행복한가에서 인터뷰도 할 수 있게 되어 기쁩니다.




    Q. 최근 JTBC ‘싱어게인’을 통해 멋진 무대를 보여주셨잖아요. 영아 님에 대한 반응도 뜨겁습니다. 소감이 어떠신가요!

    제가 ‘싱어게인’을 준비할 때 사실 마트 계산원을 하고 있었거든요. 코로나로 인해 무대에 설 수 없게 되면서 택한 일이에요. 간만의 무대라 많이 떨렸는데 좋아해 주시는 팬 분들께 너무 감사드려요.
    원래는 2020년 2월에 앨범 제작과 행사를 할 기회가 찾아와 계약 단계까지 갔었거든요. 이 나이에 이런 기회가 와서 되게 좋아했는데, 그 후에 코로나가 터졌고 모든 행사가 취소되었어요. 그래서 결국은 계약 파기가 돼서 우리 동네에 있는 마트에서 아르바이트를 뛰기 시작했어요. 그런 와중에 제가 24살 때부터 함께한 매니저가 저에게 JTBC ‘싱어게인' 이라는 오디션에 한 번 도전해보지 않겠냐고 제안했어요. 망설이던 저는 매니저의 설득으로 도전하게 되었고, 그 후로 재미있는 날들이 펼쳐지고 있네요.

    ●싱어게인 50호 가수 ’미니데이트‘



    Q. 어릴 때 노래를 시작하게 된 계기가 있다면 무엇인가요?

    저희 집안에 음악을 하는 사람은 없는데요, 우리 엄마가 노래를 상당히 잘했어요. 엄마의 꿈이 가수였거든요. 그런데 시골 분이셔서 연예계에 진출할 기회를 얻지 못하셨던 거예요. 그 한 때문이셨을까요, 저에게 전폭적인 지원을 해주셨어요. 제가 어렸을 때 교육열이 상당히 높을 때라 보통은 부모님이 자녀들에게 무조건 공부를 강요한다면, 우리 엄마는 그러지 않았어요. 옆집에 아주머니가 자기 딸이 공부를 잘해서 서울대 들어간다고 자랑을 하면, 우리 엄마는 '서울대 들어가면 뭐 하나, 자기 딸은 노래 잘하나!'? 이렇게 얘기하는 엄마였어요.

    #어머니의 전폭적 지지

    저는 학창 시절 때부터 공부에 스트레스를 한 번도 받지 않고 자란 사람이에요. 무조건 제가 원하는 것을 전폭적으로 지원해주셨어요. 외국 스타일이라고 해야 할까요? 하여튼 좀 특이한 집안이었어요. 밥 먹기 싫으면 보통 굶긴다고 하거나, 억지로 먹게 한다면 우리 집은 먹기 싫으면 안 먹어도 된다고 하셨어요. 그런 전폭적인 지지로 고3때 KBS 청소년 창작가요제에서 대상도 받을 수 있었던 것 같아요.


    ▲ 1990년 KBS 청소년 창작가요제 대상을 수상한 고3 윤영아

    #아무리 아파도 노래하고 춤출 기운은 있다!!

    또 제가 어렸을 때 굉장히 병약했어요. 맨날 기침하고 피를 토하고 몸이 굉장히 부실한 이었기 때문에 맨날 아팠어요. 그래서 초등학교 1~2학년 때는 학교를 거의 안 나갔어요. 삼학년 때부터 거의 다녔던 거 같아요. 조금 피곤하고 아프면 학교도 가지 말라고 하셨어요. 체육 시간에도 스탠드에 앉아 있던 날이 많았어요. 근데 분명히 아픈 애인데 춤을 엄청나게 추는 거예요. 아픈애가 춤추고 노래하고요. 되게 웃기죠! 하하하하. 이게 뭔가 좀 안 맞지요.

    #'흥‘이 많은 아이, 클래식 보다는 윤수일의 ’아파트‘

    그래서 엄마가 몸에 좋다는 것, 한약 등을 계속 먹이고 그랬어요. 그래서 어릴 때 엉덩이에 주삿바늘이 안 들어갈 정도로 계속 병원에 다니고요, 요양시설에도 있고 그랬어요. 지금 나의 활동적인 모습과는 전혀 거리가 멀었고요. 학교 다니기 전에 말더듬증이었어요. 말을 못 했던 아이였어요.

    그랬는데 애가 너무 끼가 많은 것이에요. 어렸을 때부터요. 그러던 어느 날 제가 초등학교 3학년 때 부모님이 크리스마스 선물로 삼익 호르겐 피아노를 사주신 거예요. 그 당시에 우리 집이 잘살았어요. 그때 피아노 있으면 잘사는 집이었어요. 그때 윤수일 선배님 노래 '아파트','황홀한 고백' 나올 때였거든요, 그때 피아노로 클래식을 쳐야 하는데 '딴딴딴딴딴~ 별빛이 흐르는~~다리를 건너~~~' 막 그런 거 계속 치고 클래식은 '소녀의 기도' 막 이러고 쳐야 하는데 맨날 가요만 듣고 피아노치고 그러는 거예요. 노래를 그때부터 이제 시작한 거예요. 어린애가 흥이 너무 많은 거죠. 학교에서 장기 자랑하면 맨 앞에 나가서 춤추고 노래하는데, 또 그 체육 시간에는 뭔가 안 맞는지 또 아파서 관중석에 앉아있고요. 

     


     

     

    Q. 학교에서 인기도 많으셨을 것 같아요! 가수의 꿈은 어떤 계기로 키우게 되신건가요?

    네, 중고등학교 때 인기 많았어요. 고등학교 때 잊지 못할 친구가 한 명 있는데요, 이름이 지금도 기억나요. '안정미'라는 친구가 있어요. 저에게 카세트테이프 휘트니 휴스턴 2집을 선물해줬어요. 그 앨범을 듣고 세상에 이렇게 노래 잘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어요. 정말 충격적이었어요.

    저의 친오빠들이 팝송, 헤비메탈을 좋아하셔서 저도 자연스럽게 음악을 많이 듣고 자라긴 했지만 선물 받은 휘트니 휴스턴을 앨범을 들으면서 가수의 꿈을 키우기 시작했어요. 가수가 되기 위해서 'Didn't We Almost Have It All' 이 노래를 연습했어요. 그런데 눈이 상당히 높으신 우리 엄마가 저보고 돼지 멱따는 소리 하지 말라고 했어요. 그래도 저는 계속하겠다고 해서 모든 코치를 우리 엄마가 다 해줬어요.

    Q. 영아 님을 위한 완벽한 맞춤 개인지도 선생님이 어머니셨군요.

    네, 맞아요. 저는 음악을 모두 어머니께 배웠어요. 저희 어머니는 굉장히 키도 크시고 서구적인 스타일이셨어요. 대장부 느낌의 어머니셨어요. 지금 저의 그루브는 어떻게 보면 어머니의 영향이 컸던 것 같아요. 선비같은 과묵하신 아버지와 결혼하셨지만, 그와 반대로 너무도 자유분방한 영혼을 갖고 계신 어머니는 저의 분신이나 다름이 없었어요.

    #고3때 결석만 43번!!! BUT 책임감 하나는 끝내줘요

    제가 고3 때 학교 결석을 43번 했어요. 어릴 때 병약했다고 그랬잖아요? 우리 집은 컨디션이 안 좋으면 학교를 왜가? 쉬어! 라고 했어요. 그 당시 학교에 안 가면 뭔가 큰일이 날 것 같은 시절인데 저는 교육열이 하나도 없는 집안에서 태어나서, 컨디션만 안 좋아도 애를 학교에 안 보내고 집에서 쉬라고 했던 거예요. 그런 저의 생활기록부를 본 대학교 면접관, 지금은 고인이 되신 KBS 열린음악회 지휘자셨던 정성조 교수님이 '결석이 많네요. 이런 친구들이 보통 졸업을 못 해요' 하시더라고요. 생활 태도가 나쁘다는 거잖아요. 그런데 저는 졸업할 수 있다고, 잘 부탁드린다고 면접 볼 때 그랬었어요. 제가 그래도 성실하고 책임감 하나는 끝내주거든요.

    #전축 틀어놓고 엄마와 함께 댄스댄스~♬

    제가 하도 병약하니까 엄마가 제가 있는 곳에 수시로 드나드셨어요. 어느 정도였냐면 우리 친구들이 '영아야! 너네 엄마 왔어~~' 이래요. 그러면 저는 너무 반갑게 ’어~~!엄마 안녕~~!!‘이래요. 너무도 익숙하고 당연한 모습이었어요. 엄마가 친구들과 먹을 빈대떡, 딸기우유를 만들어주시곤 했어요. 제가 먹을 걸 엄청나게 좋아하거든요. 보통 이런 엄마가 없어요. 엄마가 그런 부분을 많이 신경 써주셨어요. 거의 엄마랑은 친구 이상으로 지냈어요. 집에서 엄마랑 친구들이랑 전축 틀어놓고 춤추고 노래하며 놀기도 했어요. 하하하


    ▲ 3살 때 엄마와 함께 놀이터에서

    Q. 보통 그 시대의 어머니들이 특히 딸보다는 오히려 아들을 더 챙기셨을 텐데요, 그래서 오빠들 질투가 엄청났을 것 같아요.

    맞아요, 특히 작은오빠가 많이 질투했었죠. 하하하. 옛날에 정말 성차별적인 거, 남아선호사상 그런 거 있잖아요. 저는 그런 것을 못 느끼고 살았다가 나중에 사회에 나와서 늦게 깨달은 거예요. 우리 집은 그런 게 없었거든요. 지금 생각해보면 엄마가 시골의 정을 가진 대장부 스타일이었어요. 또 힘들게 일하시는 분들을 보면 엄청나게 잘 챙겨주셨어요. 반면 우리 아버지는 되게 신사적인데 냉냉한 그런 스타일, 하지만 영어 잘하는 엘리트셨고요. 보면 엄마는 키도 크고 서구적인 체형이셨는데, 또 아버지는 엄마보다 키가 작고 아담했어요. 그게 너무 재밌네요. 하하하.


    ▲ 어린 시절 윤영아 가족사진

    Q. 어머님이 해주신 음식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무엇인가요?

    엄마가 어릴 때 간식을 많이 만들어주셨거든요. 제일 기억에 남는 간식은 ‘과즐’이예요. 찹쌀을 뻥튀기해서 밥풀떼기 같은 것을 꿀로 붙여서 해놓은 거예요.
    과즐은 발효식품이든요. 이게 효모를 발생시켜야 해서 방에 뜨뜻한 곳에 놓아야 하는 거예요. 저는 어릴 때 한옥에 살았었는데 연탄보일러였거든요. 과즐이 따뜻한 방안에 가득 펼쳐져 있는 모습이 기억에 남아요. 엄마가 손이 크셨거든요. 엄청 많이 만드셨어요. 그걸 김장 비닐 같이 큰 봉지에 가득 넣어두고 주변에 선물도 하고, 겨울 내내 먹는 그런 간식이었어요.




    Q. 가족과 함께 먹은 최고의 밥상은 무엇인가요?

    저희 아버지가 일요일마다 소풍 가는 것을 좋아하셨어요. 밥상이라고 하긴 그렇지만, 버너에 찌갯거리랑 고기랑 사서 산으로 바다로 가서 야외에서 해 먹었던 것이 기억나요. 그리고 어렸을 때 우리 집이 부유하게 살았거든요. 항상 식탁 위에 버너가 있었어요. 삼시세끼 모두 고기를 먹었던 것 같아요. 그때 어머니가 김치를 담그셨는데, 만두를 하기 위해 김치를 담그셨던 것 같고요. 주먹만 한 만두도 잊지 못해요. 근데 엄마가 췌장암에 걸려서 돌아가셨어요. 가족끼리 이야기하는 게 있는데, 우리 가족의 추억에 밥상에는 맛있는 고기가 있었지만 사실 고기는 몸에 안 좋다 이거예요. 하하하.

    Q. 그래도 그때 가족과 함께했던 밥상의 힘으로, 오늘도 이렇게 멋지게 노래하고 계시잖아요:) 그때 고기 말고 계속 노래하는 원동력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저는 음악을 할 때 가장 마음이 편해요. 음악을 하는 모습이 가장 ‘나’ 다운 것이니까 편안함을 느끼는 것이겠죠?^^ 그래서 계속할 수 있어요. 저는 신이 인간한테 주신 선물 중에서 가장 큰 것이 음악이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음악은 그때마다 기분에 따라 선택해서 들을 수 있고요, 힘들 때 위로가 되기도 하고 기분 좋을 때는 더 흥이 나게도 하죠. 나는 음악의 가장 친한 친구예요.

    제가 음악을 들을 때는 위로를 위해 편안하게 듣는 게 있고 또 어떤 작업을 위해서 필요 때문에 연구하는 때 듣는 음악이 있어요. 어떠한 상황에서 음악을 듣던 저는 음악과 함께 할 때가 가장 마음이 편해요.

    근데 나이가 드니까 예전만큼 목소리가 안 나오더라고요. 옛날에는 아무리 피곤해도 목소리가 잠기지는 않았거든요. 왜냐하면 옛날에는 노래에 정말 자신 있었거든요. 지금은 그때의 자신감은 나오지 않지만, 여전히 저에겐 음악이 제일 좋아요.




    Q. 가족으로서 영아 님은 어떤 사람인가요?

    사실 가족으로부터 많은 상처를 입은 사람이에요. 아버지가 포크레인 사업을 하시면서 집안의 가세가 기울어졌어요. 갑자기 공주가 하녀가 돼서 돈을 벌어야 하는 상황이 왔어요. 갑작스러운 변화에 내적으로 많이 힘들었어요. 스물네 살 때부터 노래해서 돈을 벌기 시작했어요. 그래서 저는 다시 20대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없어요. 그 당시에 저는 빨리 30대, 40대가 되고 싶은 마음이었어요. 그런데 어느덧 내일 모래가 50이네요.

    #가족을 위해 헌신했던 20대

    꽃다운 젊은 청춘인 20대때 가족에 대한 모든 책임을 떠안아야 했기 때문에 가족 자체를 별로 안 좋아했어요. 엄마가 돌아가시고 지금까지 한 번도 아버지랑 떨어져 산 적이 없거든요. 집안의 모든 책임은 떠안고, 무슨 일이 터지면 내가 그걸 수습을 해서 막아야 했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식 된 도리라는 것을 지키며 살아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도리는 책임이거든요. 내가 꼭 좋아서 싫어서가 아니고요.


    ▲ 어린 시절 공원 나들이 때 가족사진

    #남편을 통해 깨닫게 된 가족의 의미

    저희 남편이 9남매 장남이거든요. 남편의 가족은 우리 집이랑 너무 다르더라고요. 어쩔때는 정말 가족이 없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어쩌면 이 아니고 이 남편을 만나기 전까지 항상 그 생각하고 살았어요. 저는 항상 외로웠고, 오히려 내 친한 지인이 가족이었어요. 제가 26살 때 엄마가 돌아가신 이후로 가족의 의미를 그렇게 두고 살아왔어요. 그런데 이 남편의 가족은 정말 화목하더라고요. 저는 가족의 의미를 그때 처음 알았고 성경에 보면 아담에게 하와를 붙여주시잖아요. 그게 돕는 배필의 의미예요.

    #아버지를 통해 다시 만난 형제들, 그리고 용서

    우리 아버지가 작년에 돌아가실 뻔했어요. 그때 아버지가 보름 동안 중환자실에 무의식 상태로 있었고, 그때 형제들이 싸인을 해야 하는 상황이 왔어요. 무의식 상태에서 더 연명하지 않겠다는 가족들의 동의를 구하는 그런 사인들을 해요. 그래서 그때 정말 오랜만에 연락을 했어요. 그동안 오빠들을 안 보고 살았었고, 앞으로도 그럴 생각이었거든요. 우리 아버지 돌아가셔도 연락을 안 하려고 그랬어요. 그런데 어쩔 수 없이 싸인을 받아야 해서 연락을 할 수밖에 없었어요. 근데 그때 그걸 느꼈어요. 저는 한 번도 용서할 마음도 없었는데 그런 계기를 통해서 형제들을 만날 수 있는 자리를 만들어주신 것을요. 그래서 용서하자는 마음이 생겼어요.

    그래서 그 후부터는 지금도 연락을 하면서 살아요. 오빠도 오고 가고요. 그러니까 아버지의 아픔이, 아버지의 죽을병이 가족의 단절되는 것들을 다시 연결하는 큰 고리가 됐고 용서의 그 어떤 사건이 된 거죠.

    Q. 영아 님에게 가장 큰 '행복'이란 무엇인가요?

    저는 성경 말씀을 들을 때가 참 행복해요. 말씀을 보면서 뭔가 내가 감동적인 것들을 받았을 때 느꼈던 것들을 독후감 쓰는 그것처럼 정리했을 때의 내 마음이 제일 좋고요. 제가 음악을 가르치거나 플레이해서 듣는 그런 게 아니라, 남들이 올려놓은 내가 생각지 못한 콘텐츠의 음악을 듣는 게 너무 좋아요. 우연히 기분 좋은 친구를 만난 그런 느낌이예요.

    그리고 오후 6시에 KBS FM 93.1MHz에 '세상의 모든 음악'이라는 라디오 프로가 있어요. 클래식 채널인데 영화음악, 제3세계 음악이 많이 나와요. 그 시간이 노을이 많이 지는 시간이거든요. 저녁에 아름다운 석양과 함께 가사는 없지만, 마음을 울리는 음악이 흘렀을 때 벅차오르는 그 느낌이 너무 좋아요. 제가 제일 좋아하는 것들은 그런 거예요.

    Q. 하늘에 계신 어머님께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요?

    엄마한테 참 감사해요. 그래도 그때 공부도 좀 시키지! 나중에 보니 제가 학구열이 높은 사람이더라고요. 제가. 하하하. 일반적인 아이들처럼 키우지 않고 특별하게 길러주신, 지금 윤영아를 만들어 준 어머니 그리고 아버지께 모두 감사해요. 어떻게 보면 특이했던 교육 스타일로 내 안에 그루브가 생겼을 수도 있을 거 같아요. 고기도 먹어본 놈이 안다는 그런 얘기가 있잖아요. 새 장 안에서 굉장히 자유롭게 살아왔잖아요? 그러다 보니까 몸짓이나 이런 게 학습되어 나온 것들이 아닌 너무도 자연스러운 그루브인것 같아요. 토종 한국인인데 저보고 외국에서 살다 왔냐고 물어본 사람들이 많아요. 모두 저희 어머니가 전해주신 것들이예요.

    Q. 앞으로의 꿈은 무엇인가요?

    저는 싱어게인을 통해서 대중음악으로 다시 돌아왔어요. 물론 음악은 계속했지만, 음악에 관련된 일을 했지, 대중음악의 길을 가지는 않은 거니까요. 어떻게 보면 다시 신인이 된 거예요. 우선은 지금 유튜브에 '윤영아 TV 미니데이트' 채널을 열었어요. 유튜브를 하면서 활발하게 다양한 활동을 해나가고 싶어요.

    제가 유튜브 하면서 느낀 게 뭐냐면 ‘힘’이라는 것은 한쪽에서 무조건 주는 게 아니더라고요. 저에게 격려의 메시지가 오면 나도 위로받고 힘을 받아 같이 상승하거든요. 그것들이 한쪽에서만 나오는 무조건적일 순 없다는 거죠. 저에게 능력이 허락되는 한 그래서 정말 좋은 영향을 끼치는 가수로 남고 싶어요. 그리고 노래를 통해서 조금 더 다양한 콘텐츠로 잘 뻗어갔으면 좋겠어요.

    Q. 마지막으로 가족생활 중심 행복한가 구독자분들께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요즘 코로나로 모두 일자리를 잃고 힘들잖아요. 이제 좋아질 날만 오기를 기도하는 마음으로 기다려봅니다. 행복한가 가족 여러분이 코로나로 인해 저처럼 하지 않던 일을 하고 계신다면, 그 자체만으로도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요. 그런 모든 짐이 왔을 때는 내가 할 수 있으니까 그것도 오게 되는 것이거든요. 함께하는 가족을 생각하면 가릴 것이 없는 것 같아요.

    결국은 내가 돈을 벌어야겠다는 선택을 한 거잖아요. 물론 저는 하지 않던 일들을 해서 마디마디가 다 나갔어요. 근데 내 안에 뭐가 생겼어요? 아 음악만 하는 게 아니구나, 다른 일을 하며 살아도 또 굶어 죽진 않겠다는 것을 얻은 거예요. 난 그렇게 생각해요. 몸은 힘들고 뭔가 일이 마음에 안 들 수 있어요. 근데 내 안에 힘이 이전보다 더 커질 수 있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그런 것을 두려워하지 마시고 우리 함께 가요!



    ▲행복한가 주걱을 들고 환하게 미소짓고 있는 가수 윤영아 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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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튜브 :‘윤영아TV미니데이트’ 바로가기

    이상 행복한가 에디터♥ 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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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봄이
    2021-02-25

    삭제

    그래도 가족이라 힘을낼수있는것같네요
    활동 기대합니다
  • 이수연
    2021-02-05

    삭제

    글 잘 읽었습니다~ 글을 읽고 힘이나네요!! 아자아자 윤영아님도 화이팅 하시고 항상 우리를 위해 노래 불러주세요~~!! 감사합니다^^
  • 김수정
    2021-02-05

    삭제

    앞으로의 활동도 응원합니다~^^
  • 김훈기
    2021-02-05

    삭제

    윤영아님 글 잘 읽었습니다.
    모든 가정이 힘든 사연이 있는것 같습니다. 이 글을 읽고 저도 힘을 내겠습니다.
    유튜브도 들어가겠습니다.
  • 장혜영
    2021-02-04

    삭제

    그루브의 뜻도 이번에 알았네여
    인생의 그루브도 찾는 영아씨 되세여
  • 홍민석
    2021-02-04

    삭제

    인터뷰 내용 읽는 동안 힘이 나게 해주셨네요!!!
    감사합니다^^
  • 서용칠
    2021-02-04

    삭제

    부모의 할일은 자녀의 재능을 일찍발견하여주는 일이다 .
    어머니가 인생의 스승이기도합니다 .
  • 앵그리버드
    2021-02-04

    삭제

    헛,,,,제가 너무 좋아하는 50호 가수분 인터뷰네요+_+!!!!ㅋ
    인터뷰 잘 봤습니다!! 항상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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