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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인간극장 예쁜삼형제 엄마 박미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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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가 에디터가 밥주걱을 들고 전국 어디든지 찾아간다!♥
행복한가 밥주걱 인터뷰 제 5호!
꿈을 향해 달려가는 그녀, KBS 인간극장 '예쁜삼형제 엄마' 박미정
귀여운 한 생명체가 아이스크림을 통째로 들고 마시는 유튜브 영상을 보신 적이 있나요? 그영상을 시작으로 저는 이 가족에게 스며들게 되어 인터뷰까지 하고야 말았습니다. 한가지 놀라운 것은 삼형제는 엄마인 미정씨가 기저귀를 갈 때 엉덩이를 들어주었다고 합니다. 무려 한 살때요! 남들은 몸이 불편한 미정씨의 자녀양육이 특별하다고 하지만 그녀는 남들과 다를게 없다고합니다. 최근 유튜브를 통해서 구독자들과 많은 소통을 하고 있는 엄마 박미정의 이야기 함께 보시죠^^
Q. 반갑습니다.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삼형제 엄마 박미정입니다. 2015년도에 인간극장에 출연했고, 지금 이쁜삼형제 유튜브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Q. 반갑습니다:) 가족분 모두 잘 지내고 계시죠?
네, 모두 잘 지내고 있습니다. 유튜브에도 많이 출연하고 있지요. 애들이 지금 방학이라서 다 집에 있어요. 하루 세끼를 차려야 하는 상황입니다. 하하하:) 제가 장애가 있어서 저를 도와주시는 분이 계셔서 그나마 나아요. 언니가 안 계시면 정말 힘들어요. 거의 저하고 12년째 같이 하고 있거든요. 거의 저의 친언니나 다름없어요.
Q. 얼마 전 유튜브에서 막내 성윤 군 아이스크림 먹방 영상이 화제가 되어 많은 분께 사랑을 받고 계시는데요, 소감이 어떠신지 궁금합니다:)
저는 깜짝 놀랐어요. 거의 6년 전 방송인데, 유튜브를 통해 갑자기 우리 막내가 이렇게 인기를 얻게 될지 몰랐거든요. 찾아보니까 성윤이 사진만 예쁘게 꾸며주신 분도 있고요. 이렇게까지 예뻐해 주실지 몰랐거든요. 많은 사랑 주셔서 너무 감사드려요.
[인간극장 레전드 #75-2] 아이스크림 백만 개라도 사주고 싶은 귀여움❤
https://www.youtube.com/watch?v=_Lpf3duwWqM
-너무 귀여워요. 그 영상을 몇 번 돌려봤는지 몰라요.
감사합니다:) 길에 돌아다니면 사람들이 ‘유튜브 잘 보고 있습니다’ 인사해주세요. 그럼 저도 감사하다고 인사해요.
Q. 유튜브를 시작하게 된 계기도 궁금합니다.
사실 처음에 생각이 없었어요. 제가 나서는 것도 별로 안 좋아하고요, 카메라 앞에서 사람들하고 이야기하는 것도 언어장애가 있으니까 되도록 나서지 않으려고 하는데 결국 여러분들이 원해서 하게 됐거든요. 이렇게까지 인기가 많게 될지 생각도 못 했습니다.
아이스크림 먹는 아이들 영상
https://www.youtube.com/watch?v=F7uRai9BOY0
Q. 아이들 소개 좀 해주세요~! 어떤 아이들인가요?^^
저희 큰애는 6학년이에요. 사춘기가 왔지만 그래도 엄마가 뭐 해달라고 하면 거의 다 해주고 착하고 마음이 여려요. 눈물도 많고요. 우리 둘째는 4학년이에요. 자기 주관이 뚜렷해요. 그리고 사춘기가 좀 온 것 같아요. 큰애보다 빠르게 온 것 같아서요.애교도 많고 자기 할 일은 스스로 알아서 잘하고요. 어릴 때는 밥도 잘 안 먹었는데 지금은 너무 잘 먹고요. 키도 많이 컸어요.
우리 막내는 아직 귀여워요. 근데 작년부터 갑자기 살이 붙기 시작해서 이제는 통통해졌어요. 아기 때 귀여운 성윤이는 이제 없어요. 하하하. 성윤이는 저밖에 모르는 엄마 껌딱지예요. 올해 1학년이 돼서 초등학교에 입학했어요. 막내는 자기가 알아서 하는 것 같아요. 형들이 있어서 그런지 스스로 척척 하는 편인 것 같아요.
▲ 썰매장에서 삼형제와 함께
Q. 자녀 양육에 힘든 점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교육하는 부분이 힘들어요. 큰애는 영어 공부를 많이 시켰는데 작은애도 가르쳐주고 그랬으면 좋겠거든요. 근데 그게 잘 안 되고 있어서 걱정이에요. 저희 큰애는 누구를 가르쳐주는걸 안 좋아하는 것 같아요. 하하하. 그리고 우리 집이 지금 4층이에요. 엘리베이터가 없어요. 막내가 두 살 때 여기로 이사를 왔는데, 막내를 업고 계단을 올라다녔어요. 정말 힘들었지만, 다리도 건강해지고요. 신기하게 아기를 업고 올라가면 넘어지지 않게 돼요. 그게 엄마의 힘인 것 같아요. 아기를 업었는데 넘어지면 안 되잖아요. 하하하.
Q. 삼형제를 양육하는 특별한 비결이 있다면 알려주세요!!
특별한 비결은 없어요. 저는 일반 사람들과 똑같다고 생각해요. 제가 생각해도 똑같이 키우고 있는데 사람들이 대단하다고 하니까요. 근데 제가 놀이터에서 아이들이랑 같이 두세 시간씩 놀아주는 걸 보고 대단하다고 하셔요. 근데 저는 그게 대단한 건가? 하는 생각이 들어요. 다른 엄마들이 하는 것처럼 아이들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하는 행동인데 저만 유독 애들 키우는게 힘든가? 생각해보면 그건 아니거든요.
Q. 그렇군요. 혹시 스트레스받을 때 있으세요? 혹시 해소법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아우, 저 스트레스 엄청 많아요. 하하하. 아이들이 에너지가 넘쳐나니까 아침부터 소리를 지르게 돼요. 또 공부하지 않고 게임만 할 때요. 그럴 땐 제가 ‘야!!! 너네!!! 게임 그만하고 공부좀해!!!!!’ 라고 하면 ‘아~~이따가 할게요’ 하는 일상이요. 차라리 아이들이 집에 있는 것 보다 학교에 가있는게 낫겠다 생각이 들어요. 제 성격이 아이들이 내 마음처럼 이거이거를해야하는데 안하고 다른 것을 하고 있으면 그걸 못 참는 것 같아요. 저는 아이들에게 공부 좀 잘하면 좋겠다고 해요. 어저께 저희 둘째 아들 휴대전화기를 봤거든요. 저를 어떻게 저장한 줄 아세요?
-하하하. 어떻게요?
‘맨날 화내는 엄마’라고 저장해놓았어요. 하하하. 저희 큰애는 ‘갱년기 온 엄마’라고 저장해놨더라고요. 막내는 아직 ’우리 엄마’라고 저장했는데 막내도 크면 뭐라고 바꿀지 궁금해요. 아마 크면 형이랑 똑같아지지 않을까 싶어요.
-너무 재밌네요. 그냥 평범한 엄마가 아니셔요:) 하하하. 근데 아들 많은 집은 엄마가 강하게 해야 한다고 들은 것 같아요.
공감해요. 사실 남자아이들만 있으니까 저도 거칠어지고, 심한 욕은 아니지만, 이 자식아~!! 이 새끼야~!!! 라고 부르기도 하고요. 아이들이 저를 강하게 만드는 것 같아요.
Q. 항상 웃고 계신 어머님, 밝게 지낼 수 있는 원동력은 무엇인가요?
제가 항상 웃는 얼굴을 하고 있다고 하더라고요. 사실 제가 중학교 때는 사춘기가 와서 죽고 싶은 생각이 많이 들었거든요. 지금처럼 밝지 않았어요. 이건 저희 엄마도 모르고 아빠도 몰랐던 건데, 그 당시에 거울에 비친 제 모습이 너무 싫었어요. 그때 그 생각하고 나서 사춘기 지나고 돌아보니 너무 후회가 되는 거에요. 내가 왜 그랬을까, 이렇게 소중한 난데 말이에요. 그래서 내가 결혼을 하면 아이들을 엄청나게 밝게 키우자는 다짐을 그때 했어요. 저도 되게 밝게 큰 것 같아요. 저의 부모님이 저 때문에 고생을 많이 하셨거든요. 맨날 엄마 등에 업혀서 살았어요. 할머니 산소에 가도 저를 업고 가시고요, 시장을 가도 저를 업고 가시고요.
-어머님 사랑을 독차지하셨군요:)
네, 저는 그게 그렇게 고마운 거라고 못 느꼈거든요. 근데 결혼하고 제 자식이 생기니까 엄마의 그 마음이 이해가 되는 거에요. 그때부터 저 자신이 밝게 맨날 웃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어떻게 보면 제가 실없는 사람처럼 보일 수도 있을 것에요. 제가 회사에 다녔을 때 사장님이 제 이름을 안 부르시고, ’스마일’이라고 부르셨어요. 제가 매일 웃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고 했어요. 제가 많이 웃으니까 아이들도 많이 웃게 되더라고요. 웃다 보니 덩달아 같이 웃으며 행복해지는 것 같아요.
▲왼쪽부터. 미정씨 삼남매, 고등학교 졸업식 때 엄마와 함께, 20살 때
그녀의 별명은 ’스마일‘
-사춘기를 극복하시게 된 계기가 있다면요?
사춘기가 그렇게 오래가진 않았어요. 중3 때까지였던 것 같아요. 그렇게 된 이유는 제가 고등학교는 집에서 먼 안산지역에서 다녔거든요. 저와 비슷한 상황 속에 있는 친구들이 많이 다니는 학교였어요. 그때 처음으로 부모님과 떨어져서 기숙사에서 지냈거든요. 제가 스스로 모든 것을 해야 했어요. 그때부터 조금씩 달라졌어요. 빨래도 내가 하고, 이불도 정리해야 했고요. 모든 것을 내가 해야 하는 거예요. 제가 못하는 것은 친구가 도와줬고요. 제가 할 수 있는 건 못하는 친구를 도와줬고요. 못 걷는 친구가 할 수 있는 건 제가 해주고요. 제가 손을 잘 못 쓰니까 그 친구가 내 머리를 묶어주고요. 그렇게 서로서로 의지하면서 지낸 것 같아요. 그리고 지금의 남편도 만나게 되었고요:)
Q. 아이들 때문에 가장 감동하였던 순간은 언제인가요?
너무 신기한 경험인데요, 큰애는 아기 때 기저귀를 갈면, 자동으로 엉덩이를 들어줬어요. 아기 때부터 엄마가 몸이 불편한걸 알았나 봐요. 할머니나 이모가 기저귀를 갈아주면 엉덩이를 끝까지 안 들어 주거든요. 근데 제가 하면 엉덩이를 들어줘요. 저희 애들 모두 그랬어요. 정말 신기하죠?
-와 너무 신기하네요. 형제들끼리 미리 의논한 거 아닌가 싶어요! 하하하.
하하하, 정말 그랬나 봐요. 우리 학교 선배가 저처럼 몸이 불편한데요, 만나면 저에게 항상 하는 말이 있어요. 내가 직접 아이들을 키워야지 엄마의 느낌을, 엄마의 푸근함을 느낄 수 있다고요. 그래서 아이들이 제가 기저귀를 갈 때 엉덩이도 들어주고 그랬던 것 같아요:)
Q. 가족과 함께 먹은 최고의 밥상은?
첫째가 구워주는 삼겹살 밥상이요!^^ 우리 가족이 다 고기를 좋아해요. 그래서 가끔 고기를 구워 먹기도 하고 그래요. 고기를 먹으면 항상 큰애가 고기를 굽거든요. 또 맛있게 잘 구워요. 우리가 말하지 않아도 알아서 고기를 굽는데 좀 미안하기도 해요. 엄마 아빠가 구워줘서 큰애가 먹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해서 미안해요. 한 번씩 친척들과 다 같이 고기를 먹는 날이면 작은 아빠가 구워주고, 삼촌이 구워주고 그러면 그렇게 좋대요. 큰애에게 안쓰럽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하고 그래요. 첫째에게 항상 더 챙겨주고 싶고 모든 걸 해주고 싶어요.
▲첫째가 구운 삼겹살
“엄마! 난 복 있는 사람이야.”
어느 순간에 저희 막내가 저한테 그러더라고요. ‘엄마! 난 복이 있는 사람이야’ 라고요. 그래서 제가 이유를 물어봤어요. ‘엄마! 나는 형들 옷 물려 입을 수 있으니까, 나는 복 있는 사람이야‘ 라고요. 그런 말에 너무 깜짝 놀랐고 감사했어요.
-제 동생은 어릴 때 제 것 물려받은 게 한이라고 하던데, 막내 성윤이가 그렇게 예쁜 말을 하다니 기특해요:)
이번에 동사무소에서 막내가 입학한다고 몇 명 뽑아서 20만 원 한도에 옷을 사준데요. 그래서 사러 갔어요. 근데 막내보고 깜짝 놀랐어요. 이 옷도 사달라하고, 저것도 사달라 하고. 다 사도 되냐고 물어보고, 신발도 고르고, 정말 많이 골랐어요. 하하하:) 너무 웃긴 거에요. 내가 너무 안 사줬나 싶어서요. 그 모습이 귀엽고 사랑스러워서 엄청나게 웃었던 기억이 나요.
▲막내와 함께 전시회에서
#엄마! 내가 문 닫고 나왔어
막내가 3살 때 웃긴 일이 하나 있었어요. 자기가 태어날 때 엄마 문을 닫고 나왔다고 하더라고요. 자기도 모르게 그 말이 나왔나 봐요. ‘엄마~! 내가 엄마 문을 닫고 나와서 나는 동생이 없지~!‘ 라고 말하더라고요. 사람들이 다 막내에게 너는 여자로 태어나지 왜 꼬추로 태어났냐는 말을 많이 했어요. 그게 막내에게 스트레스였나 봐요. 엄마는 딸이 좋아 아들이 좋아라고 물어보곤 해요. 그럼 저는 당연히 아들이 좋다고 대답했거든요. 되게 재밌게 말하기도 하고 어떻게 보면 철이 많이 든 것 같아요.
Q. 가장 큰 '행복'이란 무엇인가요?
가족 모두가 아프지 않고 건강한 것이요. 우리 가족 모두 아픈 곳 없이 다 건강하거든요. 허리가 조금 아픈 것 빼고는 다 건강합니다:) 저의 몸은 가만히 있으면 굳거든요. 애들이 대학교 갈 때까지 우리가 건강해야 애들도 잘 지낼 수 있잖아요. 아이들이 클 때까지 남편과 제가 건강하게 사는것이 제 소원입니다:)
▲가족과 함께 공원에서
Q. 앞으로의 꿈은 무엇인가요?
저 꿈 많아요! 그중 꼭 한번 해보고 싶은 일이 있어요. 장애인 모델이에요. 한 번 진짜 뽑아주시는 분이 있으면 해보고 싶어요. 우리나라에 장애인 모델이 있더라고요. 근데 그분은 나이가 어리세요. 저는 나이가 너무 많아서. 하하하. 모델 말고도 유튜브를 하는 것이요. 사실 제가 말이 잘 나오지 않으니까 할까 말까 많이 고민했거든요. 근데 유튜브하고 나서 자신감이 정말 많이 생겼어요. 많은 분과 소통 하면서의 즐거움도 느끼고 있고요. 열심히 유튜브 하면서 제 꿈을 이룰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Q. 마지막으로 가족생활중심 ‘행복한가’ 구독자분들께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아이들과 예쁘게 좋은 모습으로 살겠습니다:)저희 예쁜삼형제 유튜브 구독 좋아요 많이 해주세요!
● 이쁜삼형제 유튜브 바로가기
https://www.youtube.com/channel/UCE2UL7UEpeU-nSAvnwh96FQ/videos
▲행복한가 밥주걱을 들고 미소짓는 미정씨
어서 오세요, 이곳은 '파랑 BAR'입니다.
행복한가 에디터가 밥주걱을 들고 전국 어디든지 찾아간다!♥ 행복한가 밥주걱 인터뷰 제 4호, 그 주인공은 바로~ 서울 마포구 상수동에서 자신의 가게를 운영 중이신 바텐더 '파랑' 님 입니다!^^ “하루 일과가 끝나고 집에 갈 시간. 그러나 오늘 만큼은 집에 가기 전에 다른 곳으로 가고 싶은 마음이 들 때가 있다.” 위의 대사를 낳은 드라마 ‘심야식당’을 보신 적이 있으신가요? 심야 식당은 말 그대로 밤에만 운영을 하는 곳으로, 바(Bar) 형태의 자리에 각지에서 온 손님들이 둘러 앉아 음식과 술을 먹으며 담소를 나누는 가게입니다. 손님들은 허기진 배도, 허전한 마음도 함께 채워지는 시간을 가지지요. 행복지기와 인연이 깊은 바텐더, 10년 동안 바텐더의 길을 걸어 온 ‘파랑’님이 최근에 심야 식당보다도 더욱 드라마틱하고 멋진 가게를 오픈했습니다! 맑은 미소가 아름다운 파랑 사장님과 그러한 사장님을 닮아 아늑하고 따뜻한 파랑님의 가게, 함께 만나보실까요?^^ Q.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자기소개 부탁드리겠습니다.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칵테일을 만드는 바텐더, ‘파랑’이라고 합니다! :) Q. 요즘 어떻게 지내셨어요~ 자신 만의 가게 ‘파랑 바’를 여시다니 정말로 축하드려요! ▲상수동 파랑 바의 전경 요즘은 가게 정식 오픈한 지 한 달 반 정도 되어서 가게 운영과 함께 ‘사장’이라는 직함에 적응하느라 바쁜 것 같아요. 코로나로 인해 자영업자들에게 좋지 않은 시국에도 불구하고 손님 분들이 많이 찾아주셔서 정말로 잘 해드리고 싶은 감사함과 욕심이 많아요. 어떻게 하면 더 잘 해드릴 수 있을까 고민하고 계획하느라 정신이 없답니다. 어려운 시국에 가게를 오픈하다 보니 축하하는 마음들도 많이 받았지만 가게가 잘 되지 않을까 걱정하는 이야기도 많이 들었어요. 저 또한 걱정이 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정말로 하루하루 기쁜 마음으로 이 시기를 이겨 내어가고 있습니다. :) Q: 그러시군요!^^ ‘사장’이라는 직함이 익숙해지는 중이라고 하셨는데, 이제까지는 다른 가게에서 직원 바텐더로서 일을 하셨잖아요. ‘사장’이라는 이름에 적응한다는 것은 어떤 느낌인가요? 일단 모든 곳에서 저를 ‘사장’이라고 부르기 시작했고요. 예를 들면, 가게 이름이 바로 저의 바텐더 닉네임 ‘파랑’이다 보니까 ‘파랑 사장님!’ 하며 연락이 온달지, 아무렇지 않게 제로페이나 관리비 및 국민연금 공단 등에서까지 모두 저를 ‘파랑 사장님’이라고 부른다는 점이 새로운 것 같아요. 재료 발주처나 거래처에서도 당연히 ‘사장님’이라고 부르고요. 특히 오랜 지인들이 ‘사장님~’ 하거나 ‘대표님!’ 하고 장난 칠 때면 정말로...ㅎㅎ 아직까지 적응이 되지 않는답니다. Q: ‘파랑 사장’이라는 호칭이 아직은 낯설지만, 후에는 바텐더들의 꿈과도 같은 ‘마스터’ 칭호를 얻으시기를 바랍니다! ‘파랑’이라는 닉네임이 독특하면서도 예쁜 것 같아요~^^ 어떤 이유로 자신의 닉네임을 파랑이라고 지으셨나요? ‘파랑’ 이라는 닉네임은 정말 오랜 고민 끝에 지어진 이름이에요. 옛날엔 여자 바텐더들이 자신의 닉네임을 지을 때, 일반적으로 여성스럽거나 예쁜, 예를 들면 ‘체리’, ‘이브’, ‘리사’ 등으로 짓는 경향이 있었어요. 하지만 저는 그러한 여성스러운 이름에 거부감이 있었고, 그렇지 않은 이름을 짓겠다고 선배 바텐더 분들께 말씀을 드렸죠. “그럼 무엇으로 지을 것이냐?” 라고 하길래, 중성적인 이름으로 짓겠다고 하자 함께 1시간 넘게 고민을 했어요. # 파란만장한 나의 인생, 파란이 치는 나의 이름 '파랑' 이런 저런 닉네임 후보들이 누락되고, 하다못해 지친 선배가 제게 “너 그럼 좋아하는 만화가 뭐냐?”라고 물어봤어요. 그래서 “이은혜 작가의 ‘블루’를 좋아합니다,”라고 대답했지요. “그럼 너 닉네임 ‘블루’ 해라,”라고 해서 아, 이제야 맘에 드는 이름이 나왔다, 라고 생각했지요. 하지만 저는 한국 사람인데, 꼭 영어 이름으로 해야 할 필요가 있나 싶어서 ‘파랑’이라고 저의 닉네임을 짓기로 결정했습니다. ▲바텐더 파랑이 영감을 받은 이은혜 작가의 만화 ‘블루’ (출처: 뉴시스) 파랑. 이름을 짓고 나니까 정말 갈수록 더 마음에 들었어요. ‘휘몰아치는 파도’라는 뜻도 있고, 살아오면서 인생이 ‘파랑’같은 일들이 많이 있었고 암벽에 불어오는 ‘파랑’이 많았기 때문이에요. 파랑이라고 이름을 이야기하면 손님들이 종종 ‘사랑’이라고 이름을 착각하시는 경우도 있더라고요. 또, 문학적인 표현으로 무거운 짐 없이 떠난다고 말할 때 ‘바랑’을 지고 간다는 단어도 있지요. 이렇게 파랑과 비슷하게 들리는 단어들도 다 제 마음에 쏙 들었고요. 하지만 결론적으로는 이은혜 작가님의 만화 ‘블루’가 제일 영향이 깊었어요! 만화 ‘블루’는 뜨겁지는 않지만 선선하고 서늘한, 다가가고 싶지만 다가갈 수 없고 하지만 늘 곁에 있는 푸른 느낌의 사랑과 청춘을 담은 이야기에요. 기회가 된다면 행복지기님도 만화 ‘블루’를 일독해보시기를 추천합니다. Q. 바텐더로서 일하신 경력이 10년이 되시는데요! 어떤 계기로 바텐더를 하게 되셨나요? 또, 바텐더를 계속 하시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바텐더로 근무하는 파랑의 옛 모습 당시에 처음 하던 주유소 아르바이트가 힘들어서 그만 둔 뒤에, 다른 아르바이트를 찾던 중 바텐더 아르바이트 공고를 보고 지원을 하게 되었어요. 옛날에는 인터넷으로 아르바이트를 공고를 올리고 모아두기 보다는, 직접 발로 뛰면서 모집 공고가 붙어 있는 가게들을 찾아다니면서 일을 구하는 구조였어요. 하루 종일 돌아다니다가 지친 상태로 저녁이 되었는데, 한 바 앞에 바텐더를 구한다는 공고가 붙어 있는 거예요. # 운명처럼 천직을 만나다 당시에는 연예인처럼 예쁘고 잘생긴 사람만 바텐더를 한다는 고정관념이 있었어요. 그래도 밑져야 본전이라는 생각으로 가게에 들어가서 면접을 보았는데, 매니저님이 운 좋게 저를 좋게 봐주셨어요. 그 가게에서 바텐더를 처음 시작하게 되었어요. 옛날에는 바텐더가 되려면 처음에는 설거지만 3개월, 서빙만 3개월을 해야만 했어요. 그 이후에 정식 바텐더로서 일을 할 수 있게 되었지요. 막상 그렇게 바에 들어가서 일을 하게 되었는데, 바텐딩을 하는 바텐더 선배들이 너무 멋있고 카리스마 있어 보이는 거예요. 형형색색의 칵테일들을 마술처럼 만들어내고, 손님들 응대도 능숙하게 잘 하고... 우울하게 오셨던 손님들도 선배 바텐더 덕에 힘을 얻고 나가는 모습을 보며 “저게 바로 내가 해야 할 일이다. 나의 천직이다.”라는 생각이 운명처럼 스쳐지나갔어요. 아직도 그 기분이 들었던 때, 일하기 시작한지 3일만 이었는데 그 순간을 잊지 못해요. 그 이후로 이렇게 오랫동안 바텐더 일을 하고 있네요. #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에서 가장 멋진 사람은 바텐더 사실은 바텐더 일을 하며 좋은 일만 있었던 것은 아니에요. 손님에게 상처 받기도 하고, 이상한 사람들을 만나면 또 마음이 괴롭기도 하고 그래서 한 번은 바텐더를 그만 둔 적이 있었어요. 다른 직업에 종사하던 중, 일이 끝나고 우연히 어떤 바에 놀러가서 앉아 있는데 기분이 너무 이상한 거예요. ‘나는 저 바 안에 들어가서 일하고 있어야 하는데,’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나의 자리는 바 바깥이 아니라, 바 안에서 일하는 바텐더의 자리라는 강한 느낌과 함께 심장이 두근거렸죠. ‘지금 내가 무얼 하고 있는 거지?’ 하는 의문이 들었고 그래서 바텐더의 길로 다시 돌아오게 되었어요. 마치 헤어진 연인을 다시 만난 것처럼, 이 바텐더 일이 나에게 소중함을 잊지 않고 계속 열심히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 이후로는 힘든 일이 있어도 잘 견디면서 할 수 있게 되었어요. 앞으로도 바텐더로서 평생 살다가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요. 제 생각에, “세상에서 제일 멋진 사람은 바텐더” 인 것 같아요.(웃음) Q. 우와~ 파랑님 본인도 세상에서 제일 멋진 사람이라는 자부심이 느껴져서 멋져요!^^ 사장님은 ‘파랑 바’를 열면서 ‘나는 이런 가게를 만들겠다’라고 생각하신 부분이 있으신가요? 저는 처음 ‘파랑 바’를 열면서, ‘이러한 가게를 만들겠다,’는 굉장히 명확한 그림이 있었어요. 가장 큰 모토는 “내가 가고 싶은 가게를 만들겠다,”였지요. ▲파랑 바의 벽면에는 누구나 자신이 적은 글귀와 직접 그린 그림, 사진을 걸 수 있다. # 예술적 영감이 솟아오르는 살롱, ‘파랑 바’ 예술 작품으로 이야기를 하자면, 정말 아름다운 작품일지라도 남들에게 보여주지 않고 세상에 빛을 발하지 못하면 큰 가치가 없는 물건처럼 여겨지게 되잖아요. 주류의 세계에 속하지 못한, 변두리에 있는 사람들이 멋진 예술 작품을 만들어내고 그것을 동네의 작은 ‘파랑 바’라는 공간에서 사람들과 함께 편안하게 나눌 수 있게 되기를 바라요. 마치 옛날에 서양에서 예술가들이 모여 자신의 작품들을 전시하고 자유로운 토론을 나누는 ‘살롱(Salon)’ 처럼요. 저는 모든 사람 안에 예술가가 있다고 생각해요. ‘나는 예술과는 거리가 멀어’라고 생각했던 분들도 자신 만의 예술을 자유롭게 펼쳐나가고 영감을 얻을 수 있는 공간이 ‘파랑 바’가 되었으면 해요. 자신의 작업을 사람들 앞에 선보이고 싶은데 기회가 없는 한 예술가가 있다면, 자신의 작품을 벽면에 거는 것도 좋아요. # 친환경적인 가게, 지구를 배려하며 즐기는 곳, ‘파랑 바’ 그리고 또 생각한 가게의 모토가 있다면, ‘친환경적인 바를 만들자’ 였어요. 동물복지 계란을 사용하거나 화장실 휴지를 우유팩 100개를 재활용하여 가공한 휴지를 사용하는 것, 종이 핸드타올이 아닌 깨끗하게 준비된 수건을 사용하는 것, 일회용 플라스틱 빨대를 사용하지 않는 것 모두 친환경적인 바를 만들고 싶은 저의 생각에서 나온 실천이에요. 또한, 자원 재순환을 위해서 자신이 필요 없는 옷이나 물건 같은 것들을 쓰레기로 버리지 않고 가게에 가져와서 교환할 수 있게끔 물물교환 시스템을 가게에 준비해놓았어요. 누군가 필요 없는 옷을 걸어 놓으면, 다른 사람이 와서 자기 사이즈에 맞고 필요하면 가져가고, 서로 물건을 나눠 가지는 거죠. ▲친환경적인 과정과 재료로 만들어진 파랑의 칵테일 Q. 바텐더로서 자신의 바를 운영하는 파랑 사장님만의 철학이 있으실까요? ‘파랑 바’를 운영하는 철학이라면, 이곳에서는 아무도 상처 받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바깥 세상에서 치이면서 사람들은 너무 상처를 많이 받잖아요. 이곳에서 잠시라도 회복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우리는 친구에게, 동료에게, 낯선 타인에게, 심지어 제일 가까운 가족에게도 상처를 받지요. ‘여기만은 아무도 나에게 상처를 줄 수 없는 공간이다,’라는 안심할 수 있는 피난처와 같은 곳을 만들자는 게 저의 철학이에요. 제가 파랑 바의 사장으로서 할 수 있는 것은 서로가 선을 넘는 말이나 행동을 할 경우에 제지를 하고 우리 가게에서 만큼은 서로에게 상처주지 않게끔 배려하고 노력하자는 문화를 주도하고 만들어나가는 것이겠지요. Q. 파랑님께서는 두 마리의 고양이와 함께 살고 계시죠. 귀여운 두 고양이가 파랑님에게 정말 가족 같은 존재일 것 같아요. 두 마리의 고양이와 함께 산다는 것은 어떤 느낌인가요? 1인 가구인 저에게 고양이들은 정말로 가족과 같은 느낌이에요. 친구이자 가족 같은데, 나의 혈연인 사람 가족들과는 다른 기분을 안겨줘요. 힘들거나 슬프게 하는 일이 거의 없이 언제나 웃음과 행복을 안겨주는 가족이라고 해야 할까요. 우리 고양이들을 보고 있으면 웃고 있는 내 자신을 발견하게 되어요. 이 친구들은 저에게 행복하게 해줘서 고마운 존재, 더 잘 해주고 싶은데 그러지 못해서 미안한 존재예요. 비록 동물일지라도, 함께 살아있음이 행복하게 느껴지는 가족이지요. 고양이들은 엄청난 가족이에요. 집 가는 길이 설레고, 기다려지고, 집을 항상 가고 싶은 곳으로 만들어주는 녀석들이에요.^^ Q. 가족으로서 파랑님은 어떤 사람인가요? 제 생각에 저는 사실 다소 이기적인 가족인 것 같아요... 하지만 저의 어머니의 표현을 빌리자면 ‘어른스럽고, 착하고, 이상한 아이’라고 하더라고요.(웃음) 제가 가족으로서 되고 싶은 지향점이 있다면, 저희 가족이 의지할 수 있는 듬직한 사람이 되고 싶어요. 많은 분들에게 ‘가족’이라는 단어는 굉장히 어려운 것 같아요. 잘 해주고 싶지만 잘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서 미안함이 늘 남지요. Q. 파랑님에게 가장 큰 ‘행복’ 그리고 ‘행복한 가족’이란? # 가족인데 뭐 어때, 보다는 ‘사랑하는 가족이니까’ 질문을 받고 ‘행복한 가족’에 대해서 생각을 해보았어요. 제 생각엔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선을 넘어 불화가 생기는 경우가 세상에 많은 것 같아요. 가족이니까 쉽게 생각하고 서로에게 깊은 상처를 남기는 일이 일어나는데, 생각을 바꾸어 오히려 ‘사랑하는 가족’이기 때문에 지켜야 할 최소한의 선과 존중해주어야 할 범위를 지켜주는 것이 ‘행복한 가족’이 아닌가 싶어요. 가족이니까 구성원의 행복을 위해 응원해주는 게 가족이 할 수 있는 최고의 사랑이 아닐까요? 자기가 생각할 때 좋다고 해서 그 가치를 다른 가족 구성원에게 고집하지 않으면 된다고 생각해요. ‘가장 큰 행복’을 가족과 연결 지어서 말한다면, 가족끼리 ‘정말 네가 자랑스럽다,’라고 이야기를 해줄 수 있고 그런 말을 제가 가족으로부터 들을 수 있는 것이 최고의 행복이라고 생각해요. 제가 행복한가 밥주걱 인터뷰 4호로 선정되었다는 사실을 어머니께 말씀드렸더니 정말로 행복해하고 자랑스러워 하시더라고요. 어머니가 저로 인해 행복해하는 것이 저에게는 가장 큰 행복이에요. 영어로 표현하면 “I’m proud of you.”라고 듣고 말할 수 있는... Q. 파랑님이 가족과 함께 먹은 최고의 밥상, 기억에 남는 밥상은 무엇인가요? 밥상 하니까 누군가가 생각이 나네요.^^ 제 오래된 고향 친구 중에 ‘술을 마시고 진상을 부린다’는 표현을 귀엽게 바꾼 단어인 ‘밥상’이 별명인 친구가 있거든요. 술 마시면 아주 ‘밥상’이에요~ 하하. 사실, 가족과 함께 먹은 최고의 밥상이라면 어렸을 적 어머니께서 해주신 김치국밥이 생각이 나요. 멸치육수를 진하게 끝까지 우려내어서 마지막에 멸치를 걷어내고 끓여서 만든 김치국밥 인데요. 소박한 재료가 들어갔지만 정말 따끈하고 얼큰하게 시원한 맛도 나고, 진짜로 맛있었어요. 어머니께서 한겨울에는 이것 한 그릇을 꼭 먹어줘야 한다고 하시더라고요. 사실 어린 자식들에게 더 좋은 것을 해주고 싶으셨을 텐데, 나이가 들고 나서 생각해보니 그때 엄마 마음이 어땠을까 하며 약간은 아련해지기도 합니다. ▲파랑의 생일상 가족과 함께 먹은 최고의 밥상이라고 했을 때, 꼭 혈연으로 이루어진 가족과 먹은 밥상이 아니어도 된다면 요새 들어 정말 ‘가족이라고 여기고 있는’ 사람이 차려준 생일상이 기억에 남아요. 최근에 제가 생일이었는데요. (웃음) 정말 온 정성을 다해 차려준 생일상이 요 근래 제가 먹은 최고의 밥상이었어요. Q. 앞으로 파랑님의 ‘꿈’은 무엇인가요? 파랑이라는 가게에서 낯선 사람들이 모여서 가족이 되어가는 모습을 보는 것이 저의 꿈이랍니다. 이 파랑 바가 위치한 서울이란 땅은 혈연으로 이뤄진 가족을 두고 떠나와 홀로 사는 1인 가구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그런 분들이 파랑 바에 와서 가족의 정을 느낄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칵테일을 만들 준비를 하는 파랑 #가족의 정을 느끼고 회복되는 경험을 하는 파랑 바 모든 사람들이 행복한 가정 안에서 태어나서 행복한 경험을 하지는 않잖아요. 그렇게 자신의 원 가족으로부터 상처를 받은 사람들도 이곳에 와서 서로에게 배려하며 응원하고 타인을 긍정하고 나 자신도 긍정을 받는 경험을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바 라는 공간이, 그리고 특히나 파랑 바는 가족의 따뜻함을 느낄 수 있는 공간이라고 생각해요. 파랑이라는 저를 매개체로 가족처럼 지내는 손님들의 모습을 보면 정말 행복할 것 같아요. ▲칵테일 재료를 준비하고 재료를 섞고 있는 파랑 사실 지금도 어느 정도 그렇게 지내고 있다는 생각에 얼떨떨하고 기뻐요. 서로 몰랐던 사람들이 찾아와서 ‘저번에 여기서 봤던 그 사람은 어떻게 지내냐, 잘 있냐,’는 안부도 물어보고 생각해주는 것이 정말로 가족 같아요. 서로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 도움을 줄 수도 있고요. 정말 감사한 일이고, 파랑 바는 저에게도 감사한 공간이지요. 저의 꿈은 진정한 의미로 따뜻한 가족 같은 사람들을 바를 통해 만나게 되는 것, 그래왔던 것 같아요. Q. 마지막으로 가족생활중심 행복한가 구독자분들께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 속에 있다 보면 굉장히 외롭거나, 가족의 품이 그리울 때가 종종 있지요. 저희 가게의 슬로건은 ‘그대 곁에, 동네 바’에요. (웃음) 파랑 바에 오셔서, 그리고 여러분이 살고 계신 동네에도 분명히 좋은 바가 많을 거예요, 그 곳에 가서 혈연을 나누진 않았지만 마음을 나눌 수 있는 가족 같은 분들을 만나보시는 것은 어떨까요? 가족은 항상 당신 곁에 있습니다! :) ▲행복한가 밥주걱을 들고 환하게 미소 짓는 파랑! 파랑님의 가게가 궁금하시다면? 아래의 주소를 참고하세요~:) ▶주소:서울시 마포구 와우산로 11길 21 1층 좌측 (상수역 1번 출구에서 207m) ▶운영시간 : 매일 16:00~21:00 (사회적 거리두기 단계에 따라 변동 가능) ▶연락처 : 0507-1307-3527 ▶인스타그램 아이디:@pahrang_ 이상 행복지기♥ 였습니다. ♥ 행복한가의 모든 콘텐츠는 여러분의 소중한 지지와 후원으로 만들어집니다 ♥
1인 극단 월간서커스 김종환
행복한가 에디터가 밥주걱을 들고 전국 어디든지 찾아간다!♥ 행복한가 밥주걱 인터뷰 제 6호!끊임없는 예술적 영감의 원천 ’방목‘, 1인 극단 월간서커스 김종환 1인 극단 예술가 월간서커스 김종환 님을 만나고 왔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마술대회 수상, 펌프 대회 수상 등 다양한 예술적 재능을 펼쳐온 종환님을 보고 행복지기는 분명 부모님의 특별한 지지가 있었을 것이다 라고 추측했는데요, 대답은 ‘NO’ 였습니다. 넓은 초원에 풀어놓듯 자신은 방목된 상태로 원하는 것을 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너가 하고 싶은 것은 책임지고 끝까지 하라는 부모님의 말씀을 되새기며 종환님은 다양한 활동을 펼칠 수 있었습니다. 인천 부평구에 위치한 ‘월간서커스’ 스튜디오에 직접 방문해서 이야기를 듣고 왔습니다. 함께 보시죠~! Q. 안녕하세요,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안녕하세요, 1인 극단을 운영하는 월간 서커스 대표 김종환입니다. 서커스를 무대 위의 언어로 활용해서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펼치는 그런 활동을 하고 있고요, 제가 주로 다루는 오브제는 풍선, 서커스 큐브, 대형 철제 훌라후프인 시어휠(cyr wheel)이라는 서커스 도구를 다루고 있습니다. 다양한 프로젝트를 운영하면서 이런저런 기획 활동으로 지속적인 창작을 시도하고 있습니다. Q. ‘월간서커스’ 는 어떤 곳인가요? 1인 창작 극단으로, 서커스가 베이스가 되고 연극이나 마임 적인 요소들로 극을 만드는 것을 주로 하고 있어요. 다양한 장르의 예술가들과의 협업으로 창작 활동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인천문화재단의 지원을 받아서 한국무용 그리고 전통연희를 하는 친구들과 함께 ‘고금’이라는 작품을 발표해서 올해 감사하게도 ‘신나는 예술여행’이라는 프로그램에 선정돼서 전국으로 중학교 학생들을 만나 공연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 인천 부평구에 위치한 ’월간서커스‘ 내부 사진 ▲ 작품 ’고금‘ 장면 중 Q. 월간서커스를 하기 전에는 어떤 활동을 해왔는지 궁금합니다.공군 장교였어요. 국방TV에서 기상예보관으로 활동했는데, 좀 특별한 것은 제가 ‘대한민국 최초 현역 기상캐스터’라는 타이틀이 있어요. 한미 연합사령부에서 미군과 한국군의 업무를 서로 도와줄 수 있는 중간역할도 했었어요. 그전에는 연극을 전공하고 뉴욕 브로드웨이에 가서 기획일을 배우면서 일을 한 적이 있고요. 더 어릴 때는 프로마술사 활동을 했었어요. Q. 가족분들 중에 예술계통에서 활동하시는 분이 있는지 궁금합니다:)없어요. 근데 집안 분위기가 방목형이라서요. 제가 하는 것을 믿고 놔두세요. 하고 싶은 것을 다 하는 대신에 책임을 져야 한다고 하셨어요. 오히려 더 뭘 하게 되면 신중하게 결정하고 제 선택에 책임을 지기 위해서 최선을 다했던 것 같아요. 그리고 부모님은 제 꿈에 다가갈 수 있게 많이 응원해주셨어요. ▲ 고등학교때 찍은 가족사진 Q. 어린 시절 마술대회에서 1등 상을 받은 적이 있다고 들었어요.네, 고등학교 때 롯데월드에서 열렸던 ‘제4회 대한민국 마술대회’에서 우승을 했어요. 당시 출전자들이 연예기획사로 치면 SM, JYP 같은 메이저 마술 소속사 출신이었는데, 저만 모교인 덕산고 마술동아리 ‘미라클’소속이었어요. 하하하. 그리고 대회 수상을 통해 대만 마술대회 출전권을 받아서 대만에 가서 또 상을 탔어요. Q. 정말 대단하세요! 해외에서 수상하시다니!!당시에 아시아 국제마술대회 AMA에 게스트로 초대도 받았었어요. ‘Stars of tomorrow’라고 미래 기대주로 초대를 받았는데 그때 제가 고3이었거든요. 공부해야 해서 못 간다고 했어요. 하하하. 제가 그때 대만에 갔으면 정말 마술 쪽만 쭉 했을 것 같아요. 그리고 저 고3 때 공부 정말 열심히 했거든요. 이후에 대학도 가고 연극도 하고 다양한 경험을 했다는 것에 의미를 두고 있어요. 마술이 어떻게 보면 프로라는 타이틀을 달게 된 첫 예술 장르인 것 같아요. Q. 어머님이 해주신 음식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무엇인가요?어릴 적 엄마가 만들어준 치킨볼이요. 손이 많이 가는 음식인데, 기억에 남네요. 제가 치킨을 너무 좋아하거든요. 그래서 매일 치킨이 먹고 싶었는데, 매번 사주실 수는 없으니까 어머니가 닭과 몸에 좋은 채소를 섞어서 치킨볼로 만들어주셨어요. 양념 소스를 만들어서 찍어 먹으면 치킨 부럽지 않았어요. 또 손이 크셔서 엄청 많이 만들어주셔서 몇 일 내내 먹을 수 있었어요.▲ 어머님이 만들어주신 치킨볼 Q. 가족과 함께 먹은 최고의 밥상은 무엇인가요?제가 21살 때 미국에서 1년 정도 일을 하고 한국에 돌아왔어요. 그때가 아마 처음으로 부모님과 가장 오래 떨어져 있던 때였던 것 같아요. 그렇게 집에 왔더니 부모님이 진수성찬을 차려놓으시고 저를 기다리고 계셨어요. 그때 나도 사랑받는 아들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어요. ▲ 1년 만에 한국에 돌아온 종환 님을 위해 부모님이 차려주신 밥상 Q. 가족으로서 종환 님은 어떤 사람인가요?무뚝뚝한 하지만 마음은 따뜻한 첫째아들이요:) 최근에 36개월 무이자 할부로 안마의자를 사드렸어요. 아빠가 노래를 부르셨거든요. 하하하. Q. 가장 큰 '행복'이란 무엇인가요?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고, 내가 먹고 싶은 음식을 내 돈으로 사서 먹을 수 있을 때요. 제가 장교로 제대하고 공연하는 사람으로 다시 시작하려고 하면서 몇 번의 위기가 있었어요. 경제적으로 소득이 없었으니까요. 근데 누가 그런 말을 해주더라고요. 우리는 좋아하는 일을 하니까 남들만큼만 벌면 성공한 거라고요. ▲ 종환 님 가족과 함께 모여 식사하는 모습 Q. 앞으로의 꿈은 무엇인가요?좋은 배우가 되는 것이에요. 서커스를 하지만, 무대 위에 서는 모든 사람이 배우라고 생각해요. 저는 ‘서커스’ 기예를 이용한 언어로 연기를 하는 사람이에요. 계속 끊임없이 훈련을 통해서 좋은 배우 그리고 좋은 공연을 하고 싶어요. Q. 월간서커스 공연을 보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인스타그램에 공연 소식을 올리고 있어요. 소식 보고 오시면 예술 축제 등을 무료로 보실 수 있고요. 지금 인터뷰하는 이 장소가 서커스 스튜디오인데, 이곳에서도 많은 창작 발표들이 이루어질 것에요. ●인스타그램 : https://www.instagram.com/monthly_circus/●유튜브 : https://www.youtube.com/channel/UCgYOZopTOMcSSUrKvkEHquw/videos Q. 마지막으로 가족생활중심 ‘행복한가’ 구독자분들께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사람의 내일이 어떻게 될지 모르잖아요? 되게 뻔한 말인데, ‘있을 때 잘하자’ 지금 조금 더 잘해주는 게 나은 것 같아요. 매 순간 소중하게 생각하며 가족과 함께했으면 좋겠습니다. 모두 행복하세요:) 월간서커스 종환님의 다양한 무대 영상을 감상하세요:) ● Waiting for Bus / 창작지원 ● 큐브 엑트 월간서커스 ● 2021공식 월간서커스 고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