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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꽃으로 핀 꼬마신동, 양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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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꽃은 생긴 모양도, 피는 시기도, 지는 시기도 모두 다릅니다. 그래서 사람의 가지각색 인생을 꽃에 비유하기도 하죠. 다양한 꽃 중에서는 진흙 속에서도 피는 꽃이 있습니다. 힘과 생명력을 상징하는 연꽃입니다. 역경에서 피어난 꽃의 씨앗은 천 년이 지나도, 이 천년이 지나도 다시 발아되는 힘이 있습니다.
    꼬마신동으로 유명세를 떨친 이후, 힘든 시간을 통해 이러한 창조력과 생명력을 노래로 승화시키며 감동을 주는 가수, 양지원씨는 연꽃을 참 닮았는데요. 오늘 밥주걱 인터뷰를 통해 그의 노래와, 역경 그리고 가족의 이야기를 들어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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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Q. 가족과 함께한 잊지 못할 밥상은? ​
    가족들과 중요한 이야기를 하기 위해 마련된 밥상이 있어요.
    제가 가수의 꿈을 접고 아르바이트를 하던 시절, 아버지께서 갑자기 밥을 먹자고 부르셨어요.
    “지원아, 너 지금도 가수가 되고 싶어?”라고 물으셨죠. “네, 하고싶습니다. 그런데 상황이 좋지 못해서 다시 시작할 힘이 없어요.”저의 솔직한 대답이었어요. 어린 시절 가수가 되기 위해 갖은 고생을 했고, 심지어 소속되어 있던 회사가 문을 닫은 이후였거든요. 그런데 아버지께서 미스터트롯이라는 프로그램이 시작된다고, 참가해보는 게 어떻겠냐고 말씀하셨어요.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우리 가족이 전폭적으로 밀어주겠다고 하시면서요. 고민이 되었어요. 저는 트로트 신동이라는 이미지가 있잖아요. 사람들이 천재, 신동으로 기억할 텐데, 무대를 떠난 내가 그 기대에 부합할 수 있을지 자신이 없었거든요. 그런 저의 모습에, 가족들은 매일 저를 설득했고, 어머니께서는 눈물을 보이셨어요. 그 눈물을 보고도 제가 고민된다고 할 수 없었어요.
    그래서 아버지가 먼저 밥상을 차려주셨던 것처럼, 저 또한 김치찌개가 차려진 밥상을 놓고 가족들 앞에서 응원해주니 도전해보겠다고 이야기를 했죠. 도전을 결심하게 된 시작과 끝이 소소한 밥상에 있습니다.




    Q. 4살 때부터 트로트를 불렀다고 들었어요.
    어머니 배 속에 있을 때부터 트로트로 태교했다고 들었습니다. 할아버지가 카세트테이프에 트로트 음악 틀어주시고, 장구와 꽹과리 치시는 것을 좋아하셨어요. 장구와 꽹과리 연주에 트로트 음악 틀어주시면 어머니 뱃속에서 발로 차기도 했다고 해요. 이후에는 할아버지께서 노래를 가르쳐 주셨죠.

    Q. 할아버지와의 추억이 많았다고.
    할아버지가 캠코더로 저희를 많이 찍어주셨어요. 그래서 캠코더 영상을 보면 우리 가족은 다 있는데 캠코더를 들고 계신 할아버지는 없어요. 할아버지 얼굴이 안 나와서 매우 아쉽죠. 보고 싶기도 하고요. 지금 계셨더라면 유튜브 스타 되시지 않으셨을까요? 정말 자는 시간 빼고는 거의 캠코더 들고 순간 순간을 영상에 담으셨거든요.
    할아버지는 흥이 많으셨고 분위기 메이커였고, 동네에서 인기스타였어요. 할아버지 주변에 늘 사람이 많았어요. 그렇지만 노래 부를 때는 엄하셨어요. 음정, 박자 틀리는 거에 엄하게 혼내셨죠. 그때부터 하드 트레이닝을 받은 것 같아요.​
     

     출처 : 부산mbc-[유튜브 뮤직월드] https://youtu.be/RHuwhVlmRdA


    Q. 어린시절 일본에서 힘든 시간을 보냈다고 들었어요. 
    처음에 일본에 가게 된 계기는 13살 때, 트롯트 신동으로 장윤정, 박현빈 선배님이 있던 회사에 소속되어 있었어요. 가요무대 최연소로 출연했어요. 그때 일본에서 온 관계자가 저를 보고, 트레이닝 시켜서 일본에서 데뷔시키면 좋겠다고 제의하신 거에요. 그날 저녁에 회사에 모여서 회의를 했죠. 일본에서 러브콜이 왔는데 넌 어떠니 라고 회사에서 여쭤보시고. 지금의 저라면 고민을 많이 했을 텐데, 그때는 어떤 패기였는지 한 치의 고민도 없이 가겠다고 했어요. “일본 가면 스타가 될 수 있잖아요.” 제가 어른들게 했던 말이에요. 이, 일본 콜롬비아 레코드라는 회사에 소속되었죠. 한국으로 치면 3대 기획사에 해당하는 레벨의 회사였어요. 그 회사에서 저를 상대로 “남자 보아 프로젝트”에 돌입하게 됐어요. 한국인이라는 정체를 숨기고 트레이닝 시켜서 일본인과 다름없을 정도의 실력과 언어를 갖춘 채 데뷔하고, 한국인임을 밝혔을 때 쇼크를 주는 전략이었죠. 남자 아나운서 집에서 하숙도 하고, 부모님도 못 만나고 힘들었어요. 일본은 중학생 때부터 자립하는 경향이 있어요. 저도 거기에 적응해서, 먹고살기 위해 중학생 때부터 편의점 아르바이트도 하고, 용돈벌이를 했죠.
    이후 일본 회사에서 준 3가지 미션이 있어요. 첫 번째는, JLPT 1급 자격증과 길거리 버스킹이었어요. 아침 7시부터 저녁 10시까지 자격증 공부를 하는 것이 계약서 내용에 기재됐고, 해내지 못하면 한국으로 떠나야 했죠. 히라가나, 가타카나도 모르던 제가 공부하면서 하루에 볼펜 두 자루씩 썼어요.
    
    일본 공연 영상 중 (출처 : https://youtu.be/rumXmLBJuRk)
    
    자격증 통과 후 길거리 버스킹이 시작되었죠. 당시 일본으로 온 한국의 탑스타들도 버스킹부터 시작했거든요. 길거리에서 버스킹을 하고, 바구니에 사람들이 넣어주는 돈이 모이면 생활비로 썼어요. 그 미션 후 다음이 “가라오케”였어요, 한국의 노래방과 다르게, 엔카를 좋아하시는 분들이 모이는 곳이었죠. 거기서 노래를 부르면서 무대 경험을 쌓았어요.
    전국의 가라오케를 순회하는 두 번째 미션 후, “프로모션 앨범”이 마지막 미션이 됩니다. 아직 데뷔는 아니었어요. 이 가수에 대한 가치를 평가하는 차원의 앨범이에요. 앨범을 내기 전, 직접 가슴띠를 두르고 길거리 홍보를 뛰어야 했는데, 그때가 한국에 대한 반감이 심할 때였어요. 홍보물 드리면 바로 바닥에 버리시는 분들도 많았고 한국으로 돌아가라고 욕하시는 분들도 있었고요.​

    Q. 이후 데뷔는 무사히 마치셨나요?
    프로모션 후에, 한국의 가요무대같은 일본의 무대가 데뷔무대로 잡혔어요. 그래서 열심히 준비했죠. 준비에 한창인데, “동일본 대지진”이 일어납니다. 지진 자체가 문제가 아니었어요. 지진으로 인한 여진이 몇 개월 동안 지속되었어요. 길거리 지나다니면서도 토를 하고 건강에 이상이 생겼죠. 그때 한국으로 돌아오게 됐어요. 데뷔 무대를 준비하고 있는데 어떻게 돌아갈 수 있겠냐며 버텼지만, 가족들의 만류로 어쩔 수 없게 됐어요.
    이후, 한국으로 돌아와, 입대하게 됐고, 일병 때 회사가 문을 닫았다는 소식을 들었어요. 많이 힘들었죠. 제대 후에, 제가 전에 출연했던 곳에 찾아가서 인사드리러 가기도 했는데, 반응이 냉담하셨어요. 아예 무시하시는 반응뿐이셨죠. 그래서 내 가수 인생은 여기까지구나 생각했고 일반인 양지원의 삶을 살기로 한 거예요.​

    Q. 재능을 발견해주시고 키워주신 부모님께 하고 싶은 말
    부모님께 항상 감사하다는 말씀드리고 싶고, 우리 동생. 형 때문에 평탄하지 않은 삶을 살고 있는데, 형이 꼭 성공하면 내가 부모님과 동생 몫까지 보상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열심히 하고 있으니 믿고 조금만 더 기다려주세요.​

     

     출처 : 부산mbc-[유튜브 뮤직월드] https://youtu.be/RHuwhVlmRdA

    Q. 끊임없는 음악적 영감, 활동의 원동력은 어디서 오는지
    저는 기본적으로 작곡 작사 공부하면서 가장 많이 생각하는 것이 대중 여러분들이 들었을 때, 어떻게 음악을 받아들이냐예요. 전에는 후크송이 유행했다면 요즘은 가사 위주의 감성적인 노래가 유행해요. 그래서 요즘엔 자다 일어나서 밤늦게 작업실 가서 곡을 쓰곤 해요. 밤늦게 여러 가지 생각들을 하면서 작업을 하죠.​

    Q. 음색이 정말 찰지다! 양지원만의 감정선, 비결이 있다면
    할아버지에게 받은 영향이 커요. 노력해서 가수를 하시는 분들도 계시겠지만 트로트라는 장르는 어느 정도 가지고 태어나는 부분이 있어야 하는 것이 있어요. 뽕필이라는 표현이 있죠? 그런 것을 뱃속에서부터 가지고 태어나지 않았나. 그리고 할아버지께서도 엄격하게 알려주셔서, 그렇게 배우지 않았다면 저는 가수가 아닌 다른 직업의 삶을 살고 있지 않을까 해요.​



    Q. 트로트 작사. 작곡이 다른 음악과 다른 특징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가사가 하나의 시가 돼야 한다는 점이에요. 트로트를 듣는 연령층이 중장년층부터 시작되기 때문에, 그분들이 살아왔던 배경들이나 지식이 많아야 트로트 작사, 작곡이 가능하지 않나 싶어요. 그 시절에 유행했던 영화나, 콩트, 문화적인 것들을 알기 위해 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Q. 트로트를 제외하고 즐겨듣는 노래가 있다면 무엇인가요.
    저는 장르 가리지 않고 들어요. 재즈부터 시작해서 제이팝, 케이팝, 빌보드 차트 노래는 지속해서 모니터링하고 있어요. 마음이 울적하거나 할 때는 아프리카 원주민들 음악이나 삼바 음악을 찾아 들으면 참 좋아요.​

    Q. 다시 태어나도 가수를 할 것인가요?
    주 5일 일하고 주말은 쉬는 그런 평범한 삶을 살고 싶어요. 친구들 만나면 공유할 수 있는 것들이 별로 없거든요. 다시 주어지는 삶이 있다면 지금은 살아보지 않은 것을 경험하고 싶습니다. 돈을 적게 벌더라도 주 5일 일하고, 주말은 가까운 이들과 소중한 시간을 보내는 평범한 인생이요.​

    Q. 앞으로의 계획은 무엇인가요?
    겨울 콘서트를 준비 중입니다. 굉장한 프로젝트를 준비하고 있고, 방송에 보실 기회가 많이 생기실 거예요. 기대 많이 해주시고, 내년에는 양지원을 더 많이 알게 되시지 않을까 해요. 제 목소리를 좋아해주시는 분들께서 양지원의 목소리를 자주 들으며 행복한 삶을 사셨으면 합니다.​

    Q. 양지원을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물’. 평소에 사람들은 물이 익숙하니까 그리 소중하게 여기진 않잖아요. 그렇지만 살아가는 데 무조건 필요한 것이지요. 제 노랫소리도 물처럼 자극적이지 않고, 항상 여러분들 주변에서 물처럼 편안하게 들을 수 있는 게 되고 싶어서 이렇게 표현해봤습니다.​



    Q. 전국의 꼬마신동들에게 한마디
    제가 누리지 못했던 학창 시절을 꼭 누렸으면 좋겠어요. 졸업 이후에 가수를 해도 늦지 않거든요. 학창 시절이 없으면 커가면서 채워지지 않는 부분이 있고, 또 잘 시간에 자야 키도 크거든요. 수면시간 꼭 챙겼으면 좋겠어요.

    “전국에 있는 트로트 신동, 파이팅!”​

    Q. 행복한가 독자들에게 한마디 
    행복한가를 구독하고 계신 독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양지원입니다.이렇게 맛있는 밥상을 차려주셔서 행복한 시간 보냈습니다.앞으로도 행복한가 구독 꾸준히 해주시고, 양지원에게도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 서용칠
    2021-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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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은 양지길만을 걸을수는 없지요
    때로는 음지길이지만 그것이 훗날에 거름되여 영양분이됩니다
  • 장혜영
    2021-11-12

    삭제

    와 이런 친구가 있었군요
    인생의 희비를 겪은 분이라 더 음악이 진해졌으리라 봅니다
  • 조은새
    2021-11-12

    삭제

    양지원씨가 어릴때부터 트로트의 꼬마신동으로서 자라난뒤에 그때의유년기 등을 잊지않고 지금의 트로트의 가요들의 음악들을 잘불러주는 가수로 성장해서 줄곧 이어지면 좋겠네요..^^
  • 앵그리버드
    2021-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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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상까지 같이보니까 더 좋네요~~지원씨 팬입니다~~^^~~금요일 아침이 상쾌하네요~~^^
  • 정연자
    2021-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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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동 ‥신동이라고 어른들의 추켜세움에 유년기를 잃어버리게 하지 말기를 바랍니다· 기초적인 삶의 베이스가 잘 되어야 긴세월 무탈하게
    의미를 찾아 사는 것이지요· 다시 무대에 섰으니 진실한 마음으로 노래하세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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