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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내 끝사랑 내 첫사랑, 아내바라기 황교안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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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명정대', '대의'만을 위해 살 것 같은 한 남자에게도 낭만은 있습니다.

    그에게 낭만은 시였고, 노래였으며 또 사랑이었습니다. 처음 느꼈던 사랑은 그를 얼음처럼 굳게 만들었고, 40년이 지난 지금도 변치 않을, 끝사랑이 되었습니다.

    '범생이', '우등생', '검사', '엘리트', '총리' 이성과 논리, 차가움이 느껴지는 단어로만 상징되었던 황교안 대표의 몰랐던 이야기, 바로 그의 사랑 이야기입니다. 정치가 조명하지 않았던 이 이야기를 통해 처음으로 밝히는 그의 낭만에 대해 알아볼까요?

     

      



    Q. 안녕하세요 대표님. 나라를 위해 힘쓰시는 대표님의 특별한 어린 시절 모습은 어떠셨나요?

     

    A. 저는 어렸을 적 사진이 없어요. 카메라가 없었거든요. 그 정도로 어렵게 자랐습니다만 꿈은 있었습니다. 어머니 아버지께서 훌륭한 사람이 되라고 말씀하셨고, 그 말씀대로 꿈을 키워나갔습니다. 그 꿈 때문에 오늘의 제가 된 것은 아닌가 생각해요.

     



    Q. 학창 시절 우등생이었다는 소문이 자자합니다.



    A. 공부도 열심히 했지만, 다른 방면에도 관심이 많았어요. 중학교 때는 문학소년이었죠. 문예반에 들어가서 시도 쓰고, 백일장에서 시 부문 장원을 휩쓸었죠. 글 좀 썼어요. 옛날에는 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학원>이라는 잡지가 있었습니다. 매년 ‘학원 문학상’을 여는데 거기에 공모해서 우수상을 받았습니다. 고등학교 때는 음악 쪽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KBS <우리들의 새 노래>라는 경연 프로그램이 있었는데, 제가 작곡한 노래가 당선이 됐어요. 당시 유명했던 정미조 님께서 그 프로에서 제 노래를 부르셨죠. 보기와는 다르게 재밌는 학창 시절을 보냈죠?

     

      



    Q. 대표님의 부모님께서는 어떤 분들이셨나요?



    A. 저희 어머니께서는 학교를 다닌 적이 없으세요. 그래서인지 저에게 공부하라는 말보다는 윤리적인 부분을 강조하셨어요. 정직해라, 남의 물건을 탐하지 말라는 말씀을 하셨죠. 그 말씀에 따라서 자연스럽게 성장했고, 그런 것이 더 의미 있는 교육이라고 생각해요.

    아버지께서는 북한에서 내려오셔서 고물상을 하셨어요. 형편이 어려웠죠. 그래도 굉장히 강한 분이세요. 고향인 황해도에서는 씨름 장사도 하셨죠. 형님들이 스무 살 청년일 때도 아버지가 팔씨름을 이기셨어요. 제가 어렸을 때, 연탄가스를 먹고 쓰러진 적이 있어요. 그때, 그 강했던 아버지께서 정신을 잃고 동분서주하면서 뛰어다니셨어요. 다정다감과는 거리가 멀지만, 깊은 정이 있었던 아버지의 모습이 아직도 기억에 남아 있습니다.

     

      



    Q. 사모님께서 대표님의 첫사랑이라고 들었습니다. 두 분의 연애시절 이야기를 들어볼 수 있을까요?



    A. 저는 대학 다닐 때도 연애를 못했어요. 연애할 시간이 없었죠. 당시 다니던 교회에 사정이 있어서 거의 종일 교회에서 봉사로 시간을 보냈죠. 형수님께서 안타까이 여기시면서 이상형에 대해 묻곤 하셨는데, 제가 사법고시 패스한 후에 소개해 줄 자매가 있다고 하시더라고요. 제 이상형에 맞는 여성분이라고 한 번 만나보라고 설득하셔서, 자리에 나갔죠. 플라자호텔 로비였어요. 그리곤 얼음이 되어버렸습니다. 아내를 본 순간 첫눈에 반한 거죠. 사법연수하던 때여서, 오후 다섯시에 복귀하겠다고 사무실에 말씀드리고 나왔는데, 세시에 만난 아내를 겨우 두 시간 만에 헤어질 수가 없었어요.

    결국 복귀하지 못했죠. 긴 데이트가 됐으니까요. 그렇게 첫 만남에서 첫사랑이 되었고, 그 여자분이 지금의 아내가 되었습니다. 저는 아직까지도 보면 좋고, 설레는데 아내는 어떤지 모르겠네요. 하하하.

     



    Q. 사모님과 함께 음반을 내셨다는 놀라운 소식을 들었습니다.



    A. 음반 기획자님께서 얼마 전에 저희 아내에게 제안을 하셨어요. 코로나 시국으로 나라와 국민들이 힘드니, 위로가 되는 곡을 한 번 내보자고요. 그 제안에 저희 아내가 결단을 내렸죠. 마지막 녹음이 있던 날, 아내를 데리러 녹음실에 갔는데 코러스를 해보는 게 어떻겠냐고 어렵지 않다고 하셔서, 도전을 해봤지요. 헤드셋을 쓰고 네 번 정도 녹음을 했는데, 결과물을 들어보니 네 번의 녹음을 여러 사람이 부른 것처럼 만드셨어요. 멋진 작업이었습니다. 곡의 내용은 사악한 자는 지고, 진실한 사람들은 결국 승리한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기독교인이든 아니든 편안히 들을 수 있는 노래에요. 많이들 듣고 계시는 것 같아요. 반응이 좋습니다.

     




    Q. 사모님과 함께하는 가장 행복한 순간은 언제인가요?



    A. 함께 커피 한잔하는 때입니다. 20년 전 주말에, 아내와 함께 양주로 드라이브 간 일이 있었습니다. 남한강 강가에 임시 매점이 있었어요. 거기서 커피를 주문해서 테라스로 나갔죠. 남한강을 바라보며 커피를 한 잔씩 마시는데, 아내가 그러더군요. “당신은 좋겠어요. 아내를 행복하게 하는 비용이 싸게 들어서요.” 그래서 제가 “좋은 아내를 만났다."라고 했지요.

     



    Q. 행복한 가정이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A. 주례를 할 때 늘 예로 드는 게 있습니다. 부부생활은 널뛰기와 같다는 이야기입니다. 널뛰기는 두 사람이 함께 하는 것이죠. 한 사람이 뛰었다가 내려오면, 그 힘으로 한 사람이 올라가고, 다시 그 사람이 내려오면, 상대방이 올라가고. 결혼생활은 이런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서로 돕고, 높여주는 것이죠.

     

      



    Q. 아내에게 보내는 사랑의 메시지



    A. 내가 다정다감하지는 못합니다. 평소 잘 하지 못했던 말을 한 번 해보겠습니다.

    여보, 나 당신 사랑해. 말을 안 해도 사랑한다는 거 알지? 앞으로는 사랑한다고 말하면서 살겠습니다. 건강하세요.

    

  • 장혜영
    2022-0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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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는 정치는 잘 몰라요
    첫사랑이었던 지금의 아내를 사랑하듯 나라와 국민을 사랑해주시기만을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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